감귤 조수입 1조원 시대 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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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 사회2부장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귤이 재배됐는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 ‘고려사’ 세가 권7에 문종 6년(1052)에 탐라에서 세공(歲貢)하는 귤자(橘子)의 수량을 일백포(一白包)로 개정 결정한다고 돼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도 귤이 진상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세조실록’ 권2에는 세조 원년(1455) 12월 제주도안무사가 감귤이 제사와 손님 접대용으로 중요하다는 것과 감귤의 종류별 우열 및 장려 방안, 진상 방안의 개선점을 장계로 올렸다고 나와 있다.

고종 2년(1865) 왕명에 따라 출판된 ‘대전회통’ 6권에는 감귤을 재배하는 자가 노비 계급인 경우 양인으로 신분을 전환시키고, 노비 이외의 사람은 면포(綿布)를 상으로 내리되 만약 힘써 가꾸지 못하여 감귤나무가 고사하면 상으로 받은 것을 되돌려야 한다는 내용의 상벌 제도를 정해 감귤을 장려했다. 조선시대에는 동지(冬至) 전후로 감귤이 진상됐는데 귤이 대궐에 들어오면 이를 축하하기 위해 조정에서 성균관과 유생들에게 감귤을 나눠주기도 했다.

이같은 문헌 기록에 따르면 제주도에서 귤이 재배된 시기는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 시대에는 제주 전역에 걸쳐 재배됐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재배됐던 귤은 금귤, 산귤, 청귤, 동정귤, 유자, 유감, 당유자, 홍귤, 감자, 편귤, 사두감 등 재래종으로 지금의 온주밀감이 제주에서 재배된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 제주에서 다수 농가들이 재배하는 귤 품종은 ‘온주밀감’이다. 온주밀감은 프랑스 출신 에밀 조셉 타케 신부(1873~1952, 한국명 엄기택)가 1911년 일본에서 온주밀감(미장온주) 15그루를 들여와 심은 이후 널리 보급됐다.

온주밀감은 원산지가 중국 저장성 원저우(溫州)라는 의미다.

감귤은 서양으로 건너가 ‘만다린(mandarin)’이란 이름을 갖게 됐고 오렌지, 자몽 등 즙이 풍부한 과일을 ‘시트러스(citrus)’로 불리게 됐다. 알칼리성 식품인 감귤은 신진대사를 원활히 하고 피부와 점막을 튼튼하게 해 감기 예방 효과가 있다. 비타민 C가 많아 피부미용과 피로회복에 좋고 칼슘의 흡수를 도와준다. 감귤에 다량 함유된 비타민P(헤스페리딘)는 모세혈관에 대해 투과성의 증가를 억제해동맥경화, 고혈압 예방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껍질을 말린 진피는 한약재 및 입욕제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가 진피 추출물에 항암 보조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진피 추출물을 이용한 건강식품과 화장품 생산이 이뤄지는 등 감귤은 껍질에서부터 알맹이까지 버릴 것이 없는 과일이다.

1970년대 감귤나무는 ‘대학나무’로 불렸다. 그 무렵 감귤 10㎏ 가격은 2500원 내외였고 대학 등록금은 1만5000~3만원이었다.

나무 한 그루 생산량 60~70㎏을 감안하면 2그루에서 수확한 감귤로 등록금을 대기에 충분했다. 이달 초부터 올해산 노지 감귤 출하가 본격적으로 출하되면서 서귀포시가 표방한 ‘2022년 감귤 조수입 1조원 시대’ 실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상순 전 서귀포시장은 2022년까지 감귤 조수입 1조원 달성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겠다며 지난해 ‘감귤 산업 3심(心) 프로젝트’를 제시하며 당도·소농·현장 중심의 시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지난 8월 취임한 양윤경 시장도 기자회견을 통해 감귤이 서귀포시 오늘을 이끈 효자 종목이라며 전임 시장의 당도·소농·현장중심의 ‘3心(심)정책’을 통해 2022년까지 감귤 조수입 1조원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감귤 농가는 고품질 생산에만 전념하고, 유통은 농·감협이 책임지며, 행정은 지원하는 확실한 역할분담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양 시장의 말에 거는 농가들의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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