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래 살던 그 먼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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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림, 수필가

‘내가 오래 살던 그 먼 곳’은 아쉽게도 내 나라가 아닌 미국 워싱턴이다. 30대에서 60대까지 내 인생의 무게 있는 중년의 삶을 치열하게 살던 곳이다.

나이 들어 남편이 그리던 ‘마음의 고향 제주’에 돌아와 살면서 가끔 다시 방문해 보는 곳이다. 거기서 결혼하고 아들 둘을 두고 왔으니 손주 보러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에겐 장시간 비행과 시차 적응이 어려워 올해 마지막으로 다녀왔다. 손자들이 제주로 찾아오기를 기대하면서 지금부터 먹이고 데려 갈 곳을 벌써부터 그려보면 행복하다.

미국 공항에 내리면 내 ‘삶의 고향’에 온 기분이고 모두가 기억되는 곳이라 반가우면서 지난날의 파란곡절이 순서 없이 떠오른다.

60년 전 우리가 미국에 갔을 때와 지금의 모습은 놀랄 만큼 다르다. 거기도 이민정책으로 인구가 늘다 보니 도시가 점점 커지면서 제주처럼 사방에 공사가 한창이다. 농지는 크지만 작은 시골 마을이 얼마 안 가 신도시로 바뀌어 있다. 도시라도 나무를 많이 심어 수려해 동네에 들어서면 집집마다 앞뒤가 정원처럼 잘 가꾸어져 있어 동네 전체가 공원처럼 아름답다.

그 옛날 몇 백 명 안 되던 한인들이 서로 도우며 살던 모습이 지금은 몇 백만 명으로 서로 사기도 치면서 치열하게 살고 있다. 그때는 미국이 매우 부유할 때이고 기독교 정신이 강한 미국인들의 순수한 도움이 많았는데, 지금은 미국도 경제가 옛날 같지 않고 각 나라 이민 인구가 늘면서 범죄도 늘어 미국인들도 조심스럽게 살고 있다.

그러나 제주는 중국 인구가 너무 늘면 제주가 중국화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는데 미국은 이민자들이 살수록 미국화되어 미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만큼 미국은 자유, 평등이 주어졌고 철저한 질서가 잡혀 있는 나라다.

미국이 이민을 많이 받아들여도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는 근본은 교육이다.

어려서부터 자립정신과 인성교육을 철저히 시키되 강요가 아닌 자연스러운 생활로 적응시킨다. 과외 공부도 없고 숙제도 많지 않다. 또 자국의 역사를 책과 견학으로 충분히 인식시켜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일찍부터 갖게 한다. 이민 1세들은 자리 잡고 먹고 살기 바쁘지만 2세, 3세로 갈수록 완전 미국인으로 동화되어 애국자들이 된다.

초등학교 1학년 손자가 야구팀에 들어가 주말마다 한 시간씩 연습을 한다.

넓은 운동장에 1학년 팀, 2학년 팀, 3·4학년 팀, 5·6학년 팀이 한꺼번에 각기 연습을 한다. 이름 있는 야구 선수 한 명이 돌아다니며 가르치고 아마추어 선수들이 팀마다 2명씩 배치되어 있으며 야구를 좋아 하는 학부모가 한 팀에 두 명씩 자원 봉사를 하고 있었다. 손자는 야구화에 커다란 장갑을 끼고 줄서서 박수를 받으며 입장을 하고 순서대로 던져 주는 공을 5개씩 친다. 볼이 맞지도 않고 어쩌다 맞아 코앞에 떨어져도 학부모들은 함성을 질러준다. 다음엔 커다란 장갑으로 선생이 받기 좋게 던져 주는 공 5개를 받는다. 어설퍼도 받으면 부모들의 함성이 또 터진다.

그냥 야구란 어떤 운동인지를 알게 하고 단체 생활에 재미를 붙이게 하는 것 같다. 2학년 팀을 보니 뛰기도 한다. 3·4학년 팀은 제법 하는 것 같다. 5·6학년 팀에서는 중학교 선수로 뽑힌다니 운동 교육도 어려서부터 잘 설계되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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