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함식을 보고
국제관함식을 보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정수현, 소설가·시인·수필가

한 나라의 흥망은 바다에서 판가름나고 그렇게 바다를 지키는 해군은 나라의 방패이다.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임진왜란 시 일본군은 한반도에서 한때 용맹을 떨쳤으나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제독에게 수군이 참패하자 결국은 철수하였다.

이렇게 해군의 중요성은 2차대전에서도 확연히 증명되고도 남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36년간 일제통치에서 벗어나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다. 삼면의 바다를 지켜야만 나라가 안전하다는 것을 안 해군의 선각자들은 그해 11월 11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서 70여 명이 모여 해방병단(海防兵團)을 창단하였다. 그 이튿날 앞으로 모항이 될 진해로 내려갔으나 구 일본해군경비주는 미 육군이 점거해 있었다.

우리 해방병단에게는 무기와 식량은 물론 거처도 없었다. 이런 비참한 현실에 직면한 창설자 70명 중 반수가 이탈하여 37명만 남게 되었다.

1946년 6월 해방병단은 겨우 2척의 조그만 경비정으로 출범했다.

그렇게 발버둥 치며 역경을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해군도 세 번째 국제관함식을 거행하게 되었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관함식은 국가원수가 그 나라 군함의 전투태세를 점검하는 해상사열식으로 1346년 영국왕 에드워드 3세가 템스강 하구에서 프랑스로 출전하는 함대를 사열한 게 시초다.

우리나라 정부수립 후 첫 관함식은 1949년 8월 16일 인천 앞바다에서 거행했다. 참가한 함정은 고작 소해정 9척이 전부였지만 해군의 모습을 국민에 각인시키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그 후 해군의 끊임없는 노력과 국민의 성원으로 해군은 꾸준히 성장하여 국제관함식도 1998년과 2008년에 부산에서 열렸고, 2018년 10월 10일부터 10월 14일까지 제주민군복합관광미항에서 열렸다.

10월 11일 독도함에 승선한 나는 사열식에 맞추어 율곡이이함부터 하나하나 지나가는 우리나라 함정 24척의 당당한 위풍을 보고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그 다음 우리나라 최영함의 안내로 호주의 멜버른함으로부터 움직이는 비행장이라 불리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함을 마지막으로 17척의 외국함정을 보면서 우정의 표시로 손을 흔들었다.

나는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 조그만 경비정으로 출발한 해군이 이렇게 대양으로 뻗을 수 있는 장족의 발전을 가져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아마도 저 세상에 계신 해군의 창시자인 손원일 제독도 이 모습을 보며 뜨거운 격려를 보내고 있으리라 생각됐다.

우리는 해군을 사랑하고 나아가 대양 해군으로 성장을 시켜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뭉치면 가능하다. 신라 때 장보고 대사는 828년부터 846년까지 청해진(완도)에 웅거하면서 한때 동남해상 질서를 주도한 일이 있었다.

우리는 그런 전통을 이어받아 해군 발전에 기여토록 하자.

국제관함식을 보고 떠오르는 단상의 일면이다. 그리고 나는 독도함에서 귀중한 역전의 용사를 만났다. 그 분은 바로 대한해협해전시 백두산함의 갑판사관으로 적선을 격침시킨 최영섭 고문이었다. 비록 노안이었지만 아직도 건전한 모습이었고, 나는 깊은 경의를 표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