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를 가다 ⑴
남도를 가다 ⑴
  • 제주신보
  • 승인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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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섭, 시인·수필가

‘인생은 여행이다./ 여행은 떠나는 일이다./ 오늘의 나를 떠나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를 만나는 일이다.’ (고도원의 아침일기 중에서)

남도를 다녀왔다. 유월의 뜨거운 열정을 품고 세상을 향해 두 팔 벌린 장애인 예술인들의 축제인 남도 문화탐방여행을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리고 기독교인 42명의 제주회원과 다녀온 것이다. 지난 6월 5~7일 2박 3일 진행되는 문화탐방 기간에는 장애인들의 문화 예술적 향유와 배려가 아닌 권리로서 적극적 패러다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 하는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국제장애인문화교류협회’는 1987년 창립 이래 장애인의 다양한 재능, 문화예술을 개발하고 교류함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사단법인체다.

몇 년 전에도 일본의 국제장애인문화예술 교류협회, 히로시마 산악회원 장애인들이 이곳 평화의 섬을 찾아와 제주 회원들과 한라산을 등반하고 훗날 제주시 모 호텔에서 교류를 나눈 적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국제장애인문화교류협회는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번 여행기간에 다양한 문화체험을 통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넘어 몸소 체험하면서 여간한 인내심으로는 힘든 일이기에 사뭇 그 감회가 남다르다.

첫 날 전남 광주 5·18 망월동 국립묘지를 둘러 참배했다. 내 나라 내 조국을 지키겠노라고 싸우다가 피 흘린 젊은이들이 잠들어 있는 이곳, 망월동. 이러한 애국순교자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 잠시 교육관에서 그 당시 참혹했던 동 영상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광주를 시작으로 신안, 목포, 진도, 해남, 완도, 강진, 나주, 남도의 끝, 땅끝 마을까지 둘러봤다.

일일이 다 기록할 수는 없지만, 신안에서 유서 깊은 명승지를 거의 들른 다음 항구의 도시, 목포시로 옮겼다. 돌산으로 이뤄진 유달산에 오르니 망망한 목포항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잘 있소 잘 가시오.” 울며 헤어진 목포항 바닷가에 즐비하게 늘어진 수많은 배는데, 어디론지 뱃고동소리 울리며 떠나가는 배는 말이 없고 울고 울리며 떠나갈 뿐이다. 1950~1960년대의 유행가로 알려진 故 이난영 가수의 ‘목포의 눈물’로 유명하다. 또한 가수 남진이 살던 옛집이며 여기저기 목포 시내를 두루 둘러봤다.

진도를 갔다. 진도는 역사와 문화, 신비가 깃든 대한민국 민속예술특구 보배의 섬이라 하지 않은가, 진돗개로 유명한 곳이지만, 세기의 명화, 십계(十戒)에서 바다가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을 봤다.

1596년 이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벽파진전첩지로 13척의 배로 정유재란 때 해전에 참여한 133척의 왜선을 무찌른 명량대첩지 울돌목 위에 서있다.

울돌목이란 ‘소리 내어 우는 바다 길목’이란 순수한 우리의 말이다. 아울러 명랑 대첩을 기념하고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1956년 노산 이은상 선생님이 글을 쓰고, 소전 손재형 선생님의 글씨를 쓴 비문에는 당시의 역사가 적혀 있었으니 이곳 진도에 와서는 어떠한 학문과 벼슬을 지녔다 할지라도 가희 글(書)과 그림 화(畵)를 자랑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진도의 가치를 배웠다.

사지가 불편한 몸을 가진 장애인들의 머나먼 여정의 길을 돌아온 느낌이다. 그래도 그들의 얼굴엔 웃음 가득한 미소가. 제주공항엔 훈풍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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