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는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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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한국에서 성년의 나이는 법적으로 19세다. 뉴질랜드에서는 18세다. 이때부터 성인으로서 새로운 권리와 의무, 책임을 지며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살아간다. 낳고 길러준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된 인격체로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한국과 뉴질랜드는 차이가 있다. 우선 한국은 어른이 됐다고 해도 사회경제적으로 당장 홀로서기를 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우선 경제적으로 부모의 도움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시기가 결혼해 분가할 때까지 계속된다.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기간이 그만큼 길다.

이 기간에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해 정성과 노력을 다 한다. 돈이 없으면 빚을 얻어서라도 자식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려고 한다. 그게 많은 부모들의 희망이자 목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열이 유난히 뜨거운 이유다. 부모들은 결혼할 때 결혼 비용은 물론 집도 얻어주고 싶어 안달한다.

뉴질랜드는 조금 다르다. 뉴질랜드 젊은이들은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대개 경제적으로도 독립한다. 대학 공부는 자기 이름으로 융자를 받아서 하고 생활비는 정부에서 주는 학생수당이나 알바를 통해 벌어서 쓴다. 물론 생활비도 융자받을 수 있다. 그런 전통이 세워져 있고 제도가 뒷받침해준다.

지난해 말에 나온 통계 자료를 보면 2016년에 학자금 융자를 받은 사람은 대학생 등 고등교육기관에 적을 둔 학생들의 70%선인 17만 7000여 명이나 된다. 학생 1인당 한 해 동안 평균 9000여 달러(약 670만원)를 빌린 것으로 돼 있다.

지난 199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학자금을 빌린 전체 학생 수는 127만 명, 학자금 융자 총액은 무려 247억 달러나 된다. 한 사람이 빌린 학자금은 평균 2만2000여 달러지만 졸업할 때 융자금액이 10만 달러가 훨씬 넘는 학생들도 있다.

사회에 진출해 돈을 벌면 모두 갚아야 하는 빚이다. 자기 힘으로 공부하다보니 대부분 젊은이들이 빚을 짊어지고 사회에 진출하게 되는 셈이다. 그런 게 싫으면 곧장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돈을 벌다가 나중에 공부를 하는 방법도 있다. 스스로 알아서 삶의 방식을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결혼도 본인들이 알아서 한다. 한인 가정의 자녀들도 뉴질랜드에서 살다보면 이런 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따라 배운다.

하지만 한인 부모들 중에는 자식 교육은 여전히 자신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어느 한인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빚을 얻어 공부하는 게 안쓰러워 학비를 대주겠다고 했다가 아들이 거절하는 바람에 당황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한국의 전통이기도 하고 노후에 대비해서 하는 일종의 투자이기도 하다고 설명해보았지만 아들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투자를 받기 싫은 건지 아니면 부모에게 기대는 게 싫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부모의 손길은 거기까지였다. 자식 교육을 위해 이민까지 결심했던 부모로서는 서운함과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으나 도리가 없었다. 한국의 전통적인 부모 자식 관계가 단절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자기 힘으로 삶을 꾸려나가겠다는 결의가 놀랍고 더 없이 뿌듯했다.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벌써 어른이 돼 있었던 것이다. 사회가 사람을 그렇게 키워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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