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함식 유감(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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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흡, 향토사학자·국사편찬사료조사위원

어릴 적부터 관함식(觀艦式)이란 말을 들은 바 있다. 제주 강정(江汀)에서 펼쳐지는 우리나라 군함의 사열 분열식 행사에 초청받아 이를 관람하기로 하고 10월 11일 강정마을로 떠났다. 농중(農中) 2학년 당시 도보 수학여행으로 도일주(道一周)를 하면서 강정 마을에 들려 동창 윤정권과 강용희(본시 고향은 금악)를 만나 대접 받았던 추억이 떠올랐다. 모두는 고인이 되어 만나 볼 수가 없었다. 강정하면 논과 쌀이 넉넉해 널리 알려졌으나, 이제는 강정 군항 시설이 웅대하여 훌륭한 관항 명소로 변혁되었다.

과거 제주의 동남쪽 모퉁이에 동해진(東海鎭: 현 강정군항)을 마련해 동해성을 석축(石築)하고 동해고(庫)란 무기고를 두어 적정(敵情)에 대비해 왔는데 이 동해진을 모슬포로 이설하였다. 이는 서양 선박들이 모슬포 앞바다를 건너 일본 규슈(九洲) ‘나가사키’ 방면으로 항해하였던 관계가 컸기 때문이다. 아무튼 동해진을 중문 회수(廻水)라고 본 어느 향토사학자의 실수로 회수와 강정을 동일시했던 오류를 범했던 것은 슬픈 일이다.

역사는 흘러 이성계가 역성(易姓)혁명을 일으켜 불교국인 고려를 유교국가 조선나라로 변혁한 것은 높이 평가한다. 또, 박정희 장군이 조국 근대화를 이룬 점도 높게 평가한다. 박 장군은 유독 제주도지사에 해군 제독 김영관(金榮寬)을 임명하였는데, 김 도백은 길의 혁명(5·16도로 등), 물의 혁명(함박저수지·지하수 개발 등), 불의 혁명(전도 전기사업 등)을 이루어냈다. 이는 우리 세대가 편리함의 맛을 본 쾌거이며 생활의 역사이었다.

김영관 도백(道伯)은 박 장군의 지시를 철저히 완수한 해사(海士) 제1기생이요, 그는 오늘 되살아나 강정 군항에 김영관 관(館)이 뚜렷이 세워져 도민이 우러러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제주 명월 출신 오정도(吳正道)가 해사 제1기생이며 도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는데, 바다에서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 모교 제주농중과 제주도의 커다란 손실이었다. 국방장관 신성모가 산지항 함상에서 오(吳)를 칭찬하던 말을 필자는 기억한다.

이날 우리 기술력으로 건조한 전투함에 올라 함상의 높은 자리 좌우에 윤세민(尹世民: 강정), 조용옥(전 탐라중교장)과 함께 앉아 관함식의 모습을 보았다. 서귀포 앞바다 범섬이 두 입을 벌린 모습을 보면서 고려 최영 장군이 오랑캐를 무찔렀던 옛 고사를 되새기기도 했다. 일출봉함에 헬리콥터로 문대통령이 내려오며 행사는 절정에 이르고, 최영함을 선두로 각국 군함들의 사열을 받았으며, 특히 항공모함인 레이건함의 위용에 감탄의 박수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우리가 탔던 천자봉함의 내부 휴식처에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해군의 용맹한 모습에 머리를 조아렸다. 조용옥 교장은 “커져가는 우리 군의 위용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밤새 휘호한 서예작품을 전대장에게 전달하기도 하였다. 내용은 충무공의 시구(詩句)인 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알아주네>.

관함식을 마치고 행사장을 나오는데, 강정 마을 입구에는 행사에 반대하는 일부의 모습에 내 맘이 흔들려 슬픔을 느꼈다. 그러나 휘호 작품을 증정한 일이 의미 있다 생각되어 어두웠던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영웅호걸들의 애국심에 아낌없는 찬양을 보내며 나라의 미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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