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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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호 수필가

하얀 구름 몇 조각 흐르는 하늘은 그야말로 청정무구(淸淨無垢)의 극치인 양 온통 짙은 코발트빛으로 물들어 있다. 완연한 계절의 탑본(?)이 어쩜 저리도 고울까. 게다가 조석으로 감도는 서늘한 기운, 둥근 달을 배경 삼은 풀벌레 소리, 홍록으로 물들어 가는 산야. 결코 싫지 않은 징후들이 그예 가을이 우리 곁에 머무르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이름 그대로 호시절이다. 더욱이 수확의 계절이 아닌가. 농부의 땀방울을 온전히 받은 작물은 그 애틋한 기다림에 풍성함으로 보답을 한다. 그러고 보면 기다림이란 참 묘한 구석이 있다. 기다림이 간절할수록 그리움 또한 배가 되는 게 순리가 아니던가.

기다림과 그리움은 꽤나 절친인 듯, 그리움은 자연스레 기다림을 양산한다. 보고 싶어 애타는 심정을 그리움이라 하면, 사람이나 때가 오기를 바라는 것, 사물이 소용될 때까지 그대로 두어 두는 것은 곧 기다림이다. 그러니 기다림에는 적잖은 희망 혹은 소망이 스며들어 있다.

연인에 대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그리움,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 그리움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 다양한 그리움들은 모두 호사(好事)와 관련이 있다. 아마도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아픈 기억을 다시는 되살리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리라.

그리움과 기다림은 조사(釣士)의 습성과도 잘 어울리는 단어들이다. 손맛이 그리운 은 언젠가는 대어를 낚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간직한 채 낚싯대를 손질하며 출조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설혹 조과가 좋지 않아 발길을 돌리면서도 조사는 다음 출조를 기약하는 일을 결코 잊지 않는다.

그런데 조사의 이런 간절한 기원도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이산(離散)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할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 생사 여부도 모른 채 나날을 눈물로 연명하고 있는 이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가수 강산에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라는 라구요의 가사가 이를 대변하는 듯하다. 그들의 가슴과 뇌리에 금석문처럼 새겨진 그리움과 기다림에 비견할 만한 게 또 있을까?

그나마 참으로 다행인 것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 자리한 한반도에 치유의 새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이다. 차제에 아픈 세월의 흔적만큼 엉킨 실타래가 술술 풀려 그네들의 소망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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