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고삐 잡고 달리다 보니 나이 든 가을에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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⑰고마로(下)
영주십경 하나인 ‘고수목마’…고마장의 말 방목 풍경
고마로 축제, 선조들의 발자취를 후세에 전승하려 추진
고마로는 고마장이 있어 수천마리의 말을 기르고 국납했다. 선조임금 때 국마장으로 지정되며 고수목마로 불려졌다. 강부언 作, 고마로.
고마로는 고마장이 있어 수천마리의 말을 기르고 국납했다. 선조임금 때 국마장으로 지정되며 고수목마로 불려졌다. 강부언 作, 고마로.

내 가계 내력에는 말울음 배어있다

임진란에 전마를 진상했다는 할아버지

그 고삐 대물림하듯 내 동생이 쥐고 있다

 

나를 따르지 마라

폭풍의 화가건너간 길

조랑말도 아버지도 다 떠난 황톳빛 벌판

산마장 전세를 내어 말의 길을 가고 있다

 

음력 삼월 묘젯날엔 오름에도 절을 한다

고사리에 콩나물, 빙떡과 옥돔구이

누우런 말 오줌 냄새

따라가는 산딸기꽃

-김영순, <갑마장길> 전문

 

김영순의 ‘갑마장길’ 시조를 낭송한 정민자 연극인. 말울음이 배어 있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공원을 가득 채웠다.
김영순의 ‘갑마장길’ 시조를 낭송한 정민자 연극인. 말울음이 배어 있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공원을 가득 채웠다.

고마루에도 가을이 앉아있다. 장대한 소나무에서 솔잎들 내려놓자 황톳빛 새 길을 내는 모습이 도탑다.

내 가계 내력에는 말울음 배어있다/임진란에 전마를 진상했다는 할아버지/그 고삐 대물림하듯 내 동생이 쥐고 있다./’

임진란에 말을 진상했다던 시인의 할아버지 지나던 길에도 말울음 밴, 김영순의 <갑마장길> 시조다. 바람 속에 비음 섞인 말울음 소리 고마루에 당도한 듯, 말고삐를 잡고 달리듯, 연극인 정민자의 낭송에 말갈기 너울댄다.

푸른 소나무들 사이로 원색 한복차림인 무용가 장은, 한정희, 양창열이 입추의 주제로 장고 가락에 춤사위가 무르익는다. 삼라만상에 태평성대를 기원하듯 한 땀, 한 땀씩 도저한 세상 밖을 엿보는 춤사위에 잡념조차 거둬간다.

강창근 지역사회보장협의회 회장이 <고수목마(古藪牧馬)>, 매계(梅溪)선생의 한시 한 편을 들고 있다. “영주십경의 하나인 고수목마는 제주시 일도동 남쪽에 속칭 고마장(古馬場)이란 광활한 숲에서 말들을 방목했는데, 그곳을 바라보면 한 폭의 그림과 같아 고수목마로 불린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순조 때의 매촌(梅村;현재의 조천읍 신촌리), 매계 이한우(李漢雨)<고수목마>를 낭독한다.

구름 비단 마름질한 듯한 온갖 조랑말들/청총 (푸른 교룡), 구렁적다 (자색제비), 자흘(새벽 올빼미) /가랑비에 복숭아꽃 만발하니 나비 짝지어 나는 듯/석양 무렵 방초 향내에 까마귀 떼()지어 다니는 듯/월레 (얼룩무늬) 털이 이슬에 젖어 호랑이처럼 보이고/바람결에 누런 갈기 휘날리니 여우인 듯하구나/채찍을 들면 동서 사방의 먼지를 쓸어내듯 모여드니/그 누가 의 심리행동(거미 뱃속처럼 가득 찬) 경륜을 알랴?/’

-<고수목마>의 전문, 한시 해석본을 옮긴다

 

삶의 배터리를 충전시키는 서란영의 연주는 늘 소박하면서도 감동을 준다. 팬플루트 연주로 ‘에버그린’, ‘외로운 양치기’를, 오카리나 연주로 ‘개똥벌레’를 들려줬다.
삶의 배터리를 충전시키는 서란영의 연주는 늘 소박하면서도 감동을 준다. 팬플루트 연주로 ‘에버그린’, ‘외로운 양치기’를, 오카리나 연주로 ‘개똥벌레’를 들려줬다.

구름 비단 마름질한 듯한 온갖 조랑말들/채찍을 들면 동서 사방의 먼지를 쓸어내듯 모여드니/바람결에 누런 갈기 휘날리니 여우인 듯하구나./’ 귀한 시구의 행간을 음미해본다. 시간이 흘러도 우리 문화를 계승하려는 노력과 영주십경(瀛洲十景)을 선정한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소진된 삶의 배터리를 충전시켜주는 서란영의 연주다. 팬플릇 연주로 에버그린’, ‘외로운 양치기를 감상하고, 오카리나 연주로 개똥벌레를 합창하며 난장을 갈무리한다.

제주시 일도2동의 고마루 축제는 선조들의 발자취를 바로 세워 후세대에 전승하려는 큰 몸짓이다.

솔 나무 숲 사이 말고삐든 고마루의 가을도 깊어진다. 너른 초원을 누비던 어진 말들도 말안장을 내리며 집으로 향한다.

 

국악단 가향의 전병규와 현희순의 연주가 도심 속 숲을 깨우며 은은하게 깃들었다. ‘소리길’(서편제 곡)과 자작곡 ‘제주의 돌’ 등의 연주가 바람과 나무와 사람들 사이 사이에 스며들며 이들을 하나로 엮었다.
국악단 가향의 전병규와 현희순의 연주가 도심 속 숲을 깨우며 은은하게 깃들었다. ‘소리길’(서편제 곡)과 자작곡 ‘제주의 돌’ 등의 연주가 바람과 나무와 사람들 사이 사이에 스며들며 이들을 하나로 엮었다.

다음 바람 난장은 1028일 돌문화공원에서 오후 2시에 있습니다.

=장영춘

그림=강부언

영상·사진=허영숙

사회=정민자

시낭송=강상훈

음악=국악단 가향 전병규·현희순, 서란영

무용=장은·한정희·양창열

음악감독=이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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