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살기 위해 끝없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살기 위해 끝없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중산간 마을, 무장대 장악·주민들, 요구 따를 수밖에
상황 고려 없이 폭행·총살·소개령·수색…29명 학살
제주시 애월읍 어음2리에 위치한 빌레못굴. 4·3 당시 토벌대의 학살을 피하기 위해 주민들이 숨어 있던 장소이다.
제주시 애월읍 어음2리에 위치한 빌레못굴. 4·3 당시 토벌대의 학살을 피하기 위해 주민들이 숨어 있던 장소이다.

제주시 애월읍 어음2리에 위치한 빌레못굴은 화산 활동에 의해 7~8만 년 전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로, 동굴 길이는 단일 용암 동굴로는 세계 최장인 11749m에 달한다.

특히 주굴의 길이는 2917m이지만 지굴의 길이는 주굴에 3배에 달해 세계적인 미로 굴로도 유명하다.

비레못굴은 그 길이뿐만이 아니라 특이한 화산지물로 세계적인 기록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제주도민에게는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제주4·3 당시 토벌대의 학살을 피하기 위해 숨어 있던 주민들이 처참하게 학살을 당한 곳이기 때문이다.

한라산 서북쪽 어림비평원에 위치한 중산간마을인 어음리는 비매니(夫面洞), 닭우영(鷄園洞), 너산밧, 큰동네, 섯동네, 고지우영, 송아물, 사낭굴 등 자연마을들이 모여 구성된 지역이었다.

제주4·3 당시 마을의 운명은 대개 그 마을의 위치에 따라 좌우됐는데 군·경 주둔지인 해변 마을 주민들은 군·경의 명령에 따랐지만 한동안 무장대가 장악하고 있던 중산간 마을에서는 무장대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중산간 마을인 어음리 역시 마찬가지로, 주민들은 무장대의 요구에 따라 식량을 거둬 올리고, 청년들 중에는 무장대원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낮에 마을을 방문한 토벌대는 이런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무장대원이 된 청년들을 찾기 위해 주민들을 마구 폭행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 양축생씨(59·)가 토벌대의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기도 했다.

 

4·3 당시 토벌대를 피해 주민들이 숨어있던 빌레못굴 입구. 지금은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다.
4·3 당시 토벌대를 피해 주민들이 숨어있던 빌레못굴 입구. 지금은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다.

또 토벌대는 194881일 마을 청년 김용하(29)를 총살하는 등 마을을 돌아다니는 청년을 발견할 경우 무장대로 판단, 즉각 총살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마을 주민 중 청년들이나 무장대의 가족 등은 토벌대를 피해 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마을 인근에 위치했던 빌레못굴에도 많은 어음리 주민들이 숨어 들었다.

결국 무장대를 발견하지 못한 토벌대는 19481115일 어음리 주민들에게 해변 마을로 이주하라는 소개령을 내렸다.

15일부터 약 3일간 진행된 소개 작전은 온 마을을 깡그리 불태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렇게 마을을 비운 토벌대는 주변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결국 빌레못굴에 숨어 있던 주민들이 발각되며, 29명이 동굴 밖으로 끌려 나와 학살됐다.

당시 동굴에 숨은 주민 중 유일하게 목숨을 건진 양태병씨는 당시 토벌대는 주민들을 살려주겠다며 불러낸 후 사람들이 나오자마자 동굴 입구에서 바로 학살했다당시 서너 살 난 아이들도 있었는데 토벌대는 그 아이들의 다리를 잡아 바위에 메쳐 죽였다며 당시의 참상을 전했다.

또 당시 토벌대를 피해 동굴 안 깊숙한 곳으로 몸을 피한 어린 여아와 어머니가 있었는데 결국 길을 잃어버려 동굴 안에서 굶어 죽은 것으로 전해진다.

학살 당한 마을 주민의 시신은 이듬해 수습, 유골과 유물을 유족들에게 인계했으며, 동굴 안에서 굶어 죽은 시신들은 1970년대 빌레못굴 탐사반에 발견돼 유족들에게 인계됐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