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검사의 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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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잘 알려진 중국의 도연명은 원래 관리였다. 지방 영(令)으로 임명받은 뒤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남기고 낙향해 자연속에 살며 많은 서경시(敍景詩)를 썼다.

요즘 공직자들 중에도 도연명처럼 시(詩)나 수필을 즐겨 쓰는 사람들이 많다. 주로 교사.교수사회가 두드러지지만 간혹 정치인, 판.검사와 변호사 등 법조인과 전문직 종사자들 가운데 글 잘 쓰기로 소문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본도 출신 대검 형사부장 김원치 검사장(60.사시 13회)도 평검사 시절부터 수필을 잘 썼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1976년 제주지검 검사 시절에는 제주일보 ‘해연풍’ 고정 필자로 좋은 글을 많이 썼다.

당시 해연풍 담당자였던 필자는 한 예로 ‘아내 이야기’에서 보듯, 서정적인 글을 즐겨 쓰는 그에게서 대체로 딱딱하다는 검사답지 않게 부드러운 사람의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의 문장력은 검찰 안에도 잘 알려진 모양이다. 지난해 이명재 검찰총장의 연설문 원고도 그의 작품이라고 한다. 당시 회자된 ‘무사는 얼어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명구도 그가 인용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검찰이 흔들릴 때 검찰 통신망과 언론에 검찰 현안의 글을 자주 올려 화제가 되곤 했다. 최근 검찰인사 파동이 김각영 검찰총장의 사퇴로 이어지자 다시 검찰 내부 통신망에 검찰인사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필자의 관심은 그의 검찰인사 비판 내용의 옳고 그름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라 검사로서 그의 글쓰기 실력과 소신을 평가하자는 데 있다. ‘무사는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인용구로 검찰의 명예를 강조했고,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식견을 전달하는 일을 포기하는 스승들은 이 땅에서 살아야 할 가치가 없다’는 말도 했다.

그는 서열 파괴 인사 방침에 대해 ‘시골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6학년은 전원 실력이 없고 품행도 방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유급시키고 4학년에서 졸업생을 대거 배출하는 것과 같다’는 말로 대신했다. 검찰 인사의 잘잘못 문제를 떠나 재치있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이번 검찰 수뇌부 인사에서 대검 형사부장에 유임됐으나 끝내 사표를 썼다. 계속 검사장으로 남아 그의 말대로 공인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게 된 게 아쉽다. 하지만 보기 드문 검찰내 문학도요, 사실관계가 어떻든 필요할 때 할 말을 하는 소신있는 검사로 기억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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