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구르는 돌…화산이 자연에 그린 것이다
길가에 구르는 돌…화산이 자연에 그린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⑱돌문화공원(上)
큰지그리·작은지그리·바농오름 이웃 곶자왈에 위치
오백장군석상 주변 가을의 온화한 바람도 난장에 동참
지난달 28일 바람난장가족들이 돌문화공원을 찾았다. 2006년 6월 문을 연 돌문화공원은 돌의 고장 제주에 있는 돌문화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조성됐다. 오름 앞에 자리한 돌문화공원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홍진숙 作, ‘돌문화공원의 가을 오후’.
지난달 28일 바람난장가족들이 돌문화공원을 찾았다. 2006년 6월 문을 연 돌문화공원은 돌의 고장 제주에 있는 돌문화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조성됐다. 오름 앞에 자리한 돌문화공원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홍진숙 作, ‘돌문화공원의 가을 오후’.

제주에서는 산사람이 죽은 돌을 지킨다

 

진펄 같은 검은 몸체는 한 덩어리 죽음에 불과하지만 화산이 베껴놓은 크고 작은 화첩이어서 생이 날개에 뱀 모가지를 얹혀 전설을 부풀리거나 제주꼬마팔랑나비가 넘나드는 유곽이 되기도 한다

 

가까이서 보면 한 번도 소리 내어 울어본 적 없는 가슴팍,

올망졸망한 자식들을 떠나보내는 갯가의 돌덩이들은 늘 젖어 반지르르 하다

 

먼 바다에 바람이 일 때면 칭얼대는 파도를 끝없이 안아주는 황홀한 그늘,

뜨거운 불길에 눈도 코도 입도 녹아내린 몸뚱어리는 아랫뜨르 과수댁을 품은 돌하르방으로 서 있다

 

무너질 때 산목숨보다 더 크게 소리 내는 돌 더미는 죽은 돌이 아니다

 

태풍이 불때마다 복숭아 뼈까지 주저앉히는 유장하고 뜨거운 아버지,

석탄더미 같은 돌무덤 앞에서 나는 매번 발이 고꾸라져 어깨를 들썩이는 것인데

돌에서 왔다가 돌로 되돌아간 죽은 뼈들이 만 팔천을 불러오는 것인지

 

제삿날에는 죽은 돌이 산 사람을 지킨다

 

- 죽은 돌/강영은

 

김정희와 시놀이팀이 강영은의 시 ‘죽은 돌’을 릴레이 낭송했다. 각각의 소리에 얹혀진 다양한 시어들이 돌문화공원과 어우러져 난장 가족들에게 감동을 줬다.
김정희와 시놀이팀이 강영은의 시 ‘죽은 돌’을 릴레이 낭송했다. 각각의 소리에 얹혀진 다양한 시어들이 돌문화공원과 어우러져 난장 가족들에게 감동을 줬다.

저 홀로인 것은 없다. 돌문화공원은 큰지그리, 작은지그리, 바농 오름 등을 이웃하고 곶자왈에 탄생했다. 제주의 정체성, 향토성, 예술성을 바탕으로 탐라의 형성 과정부터 신화, 역사, 민속 문화를 아우르는 너른 품이다.

난장을 시작하며 정민자 사회자는 제주에서 가장 제주다운 곳, 고향에 온 것 같은 평온함이 느껴진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어머니의 방앞이 난장의 무대다. 방 꼭대기에 뉘인 원통형의 돌에 시원스럽게 비운 통로가 눈길끈다. 소통의 아이콘인양 중심부의 앞뒤가 뻥 뚫려 어떤 난제도 풀어낼 포용력이 자리한다.

김정희와 시놀이팀 이정아, 장순자, 이혜정은 강영은의 시 <죽은 돌>을 릴레이 낭송한다. “제주에서는 산사람이 죽은 돌을 지킨다/진펄 같은 검은 몸체는 한 덩어리 죽음에 불과하지만 화산이 베껴놓은 크고 작은 화첩이어서.” 이날을 위한 시처럼 시구들이 목소리를 낸다. 각각의 소리에 얹혀 다양한 개성으로 스멀거린다.

 

채미선, 한미원, 강형숙, 김윤향, 양혜숙이 오카리나 5중주를 펼쳤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어느 산골소년의 사랑 이야기’ 등을 연주하는 오카리나의 맑은 음색이 발길을 붙잡는다.
채미선, 한미원, 강형숙, 김윤향, 양혜숙이 오카리나 5중주를 펼쳤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어느 산골소년의 사랑 이야기’ 등을 연주하는 오카리나의 맑은 음색이 발길을 붙잡는다.

채미선, 한미원, 강형숙, 김윤향, 양혜숙의 오카리나 5중주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어느 산골소년의 사랑 이야기’, ‘뭉게구름연주가 시작되자 관객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오카리나의 맑은 음색을 쫓아온 발길들이 아닌가. 어느새 새들은 무대의 상공에서 감속 비행으로 꽤나 긴 협연을 펼치고 있다.

성요한 신부님이 도종환의 시, ‘단풍 드는 날자작곡을 부른다. “버려야 할 것이/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제 삶의 이유였던 것/제 몸의 전부였던 것/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가사 못지않은 멜로디도 참 예쁘다. 조동화의 시 나 하나 꽃 피어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결국 풀밭이 온통/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는 절창이다.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의 연주에 코러스 꽃이다와 율동이 실리자 신바람 붙은 난장이 들썩거린다.

어머니의 방과 오백장군석상 주변으로 한껏 내리는 따스한 햇살과 뭉게구름, 깊어가는 가을 자락의 온화한 바람이 응원해준 난장이다. 때를 놓칠세라 한 점 돌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어울리던 소통의 장이다. 이름이 있건 없건 이곳 돌들은 상대방을 더욱 돋보이도록 해주려는 꽃들 같다.

 

성요한 신부가 도종환의 시 ‘단풍 드는 날’을 가사로 한 자작곡을 부른다. 시에 음색이 실리자 신바람 붙은 난장이 들썩거린다.
성요한 신부가 도종환의 시 ‘단풍 드는 날’을 가사로 한 자작곡을 부른다. 시에 음색이 실리자 신바람 붙은 난장이 들썩거린다.

다음 호에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고해자

그림=홍진숙

영상·사진=채명섭

사회=정민자

시낭송=김정희와 시놀이

음악=채미선 외 4, 성요한 신부, 서란영, 황경수

음악감독=이상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