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양가(擊壤歌)
격양가(擊壤歌)
  • 제주신보
  • 승인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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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일(농업인·수필가)

옛이야기처럼, 가을이 깊어 간다.

서늘한 소슬바람에 놀라, 마지막 잎새들 분분히 낙하한다. 가을도 끝물이다. 어김없는 염량(炎凉)의 순환, 세월 참 무정하고 빠르기도 하다.

모두가 겨우살이 채비들로, 종종걸음 부산하다. 게다가 경제와 북핵 문제등 나라 안팎 시절이 하수상하다 보니, 얼굴들에 수심 가득하다.

하지만, 귤림추색(橘林秋色) 서귀포 들녘은 수채화처럼 아늑하고, 농부들은 노랗게 익어가는 감귤원에서, 설레임으로 행복하다.

해 뜨면 밭에 나가 일하고, 해 등지고 돌아오다 보니, 올 한 해도 다 갔다. 켜켜이 쌓인 노동의 피로, 아직도 몸 구석구석에 문신처럼 또렷하다.

그런 만큼 농부들의 수확에 대한 기다림은, 이몽룡 기다리는 옥중 춘향처럼 간절하다. 지난(至難)했던 농사일에 대한 보상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농심(農心)이 어디 있을까.

그렇지만, 함박웃음과 아쉬운 한숨 사이에서, 엄정하고 차등적인 보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농부가 일 년 동안 흘린 땀과 정성을 계량하여, 하늘은 그만큼의 달콤한 결실을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

물론 농사라는 것이, 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천재지변을 포함한 자연환경 변인들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차등적 수확물을 농부 개개인들의 노력 여하로 속단할 수는 없다.

더구나, 올해는 변덕스런 날씨에, 진땀을 흘렸다.

폭염으로 인한 가뭄으로 땅이 거북등처럼 균열(龜裂)하는가 하면, 느닷없는 국지성 호우가 기껏 살포한 농약을 씻어 버려, 병충해 방제에 애를 먹었다. 게다가 규모는 작았지만, 서너 번의 태풍이 하우스감귤 농민들을 노심초사하게 만들었다.

만추(晩秋). 탱글탱글한 노란 감귤이 마침내 산타클로스의 선물처럼 도착했다.

농부들의 머릿속에 만감이 교차한다. 풍년의 기쁨과 흉년의 아쉬움들.

그렇지만, 이내 결과들에 순응한다. 그리고는 희망의 들메끈 다시 조여 매며, 내년 농사일지를 가슴에 써내려 간다.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잘 살 수 있겠지’라는 소박한 믿음. 누구들처럼 남 속이고, 남 눈에 눈물 날 일은 하지 않는다는 도덕적 결기(決氣). 무엇보다 땅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지혜를, 선험적 유전인자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서귀포 농부들은, 태평성대였던 요순시대의 ‘격양가(擊壤歌)’를 교가(校歌)처럼 자주 흥얼거린다.

‘日出而作 日入而食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于我何有哉’(일출이작 일입이식 착정이음 경전이식 제력우아하유재)

‘해 뜨면 밭에 나가 일하고, 해 지면 집에서 잠든다,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농사지어 밥 먹으니, 황제의 부귀영화 눈곱만큼도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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