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접 2
귀접 2
  • 제주신보
  • 승인 201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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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생각만으로 공간을 넘나드는 영혼은 어떤 모습도 연출하며 남을 대신하는 역할도 가능하다. 대개는 자조적인 신세 한탄이나 죽는 순간에도 용서할 수 없는 갈등과 미움을 남겼다면 현실 세계에 머물 수 있는 자유를 택하기도 한다. 이런 행위의 책임을 알고 있지만 지독한 분노는 쉽게 지워지지 않으며 그들의 간절함이 때로는 숙연함을 불러낸다. 욕심이 아닌 진정한 뉘우침을 원하며 잘못을 반성하라는 의미 뒤에는 화해의 뜻을 담기도 한다. 두려움을 알고 나름의 번뇌는 손을 내밀어 갈등을 씻어낼 수 있는 틈을 만들어준다.

먼 길 온 손님은 외국인이었는데 우리말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첫 만남에 근심 가득한 표정은 세상 풍파를 끌어안은 듯 애처로워 보였고 또래 나이를 넘어서는 외모는 그간의 고생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연유를 물었더니 이내 눈물을 글썽이면서 누구에게도 말 못 하는 근심거리가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결혼 이주민이고 신랑이 조금의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착한 심성에 이끌렸으며 친정의 어려운 형편을 도울 수 있다는 약속에 이곳에서 새로운 꿈을 그려내려 했는데 몇 년째 아이가 생기지 않아 눈치가 보이며 수군거리는 뒷말이 듣기 싫고 혼자라는 외로움에 지쳐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단다. 이게 다냐며 숨김없이 이야기하라는 설득에 사실은 잠자리에서 어느 순간 남편의 얼굴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밀어낼 수밖에 없고, 이런 갈등으로 요즘은 서로를 피하기 바쁘단다. 얼마나 무섭고 공포에 떨었을지 막막함이 밀려왔다. 안심하라는 위로로 돌려보내고 중간 역할을 한 지인에게 지금 당장 시아버지를 데리고 오라고 명령조의 당부를 하였다. 다음날 점심 무렵 문을 두드리기에 부인은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솔직하지 못하면 본인은 물론 아들까지도 큰 화를 피할 수 없다며 바로 질문에 들어갔다. 당신을 원망하다 죽은 여자가 있는데 누구냐 물으니 한참을 극구 부인하더니 이내 기억을 해냈다. 애들 엄마를 만나면서 저울질하던 관계를 끝내야 했기에 매몰찬 이별을 한 적이 있다고 그 후 연락이 없었다가 최근 우연한 자리에서 정신병원에서 최후를 맞이했다는 소문을 들었단다. 무지함이 만든 결과이다.

서로에게 원만한 합의를 하게 해주었지만 술이 취하지 않는 밤이었다. 다행이라면 밝아진 목소리로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전화가 간혹 웃음을 선물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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