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길목 ‘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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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업, 전략사업본부장 겸 논설위원

입동은 양력 11월 7일경으로, 바로 오늘이다. 24절기 중 열아홉 번째 절기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과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의 중간에 있다. 이날부터 겨울이 시작된다고 하여 입동(立冬)이라고 한다. 겨울의 길목인 셈이다. 시골 마당 한 편에 자리한 감나무 끝엔 까치밥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중국에선 입동 후 5일씩을 묶어 3후(三候)로 삼았다. 초후(初候), 중후(中候), 말후(末候)가 그것이다. 초후엔 비로소 물이 얼기 시작하고, 중후엔 처음으로 땅이 얼어붙으며, 말후엔 꿩이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했다. 천지만물이 서서히 양(陽)에서 음(陰)으로 변하는 게다,

▲입동부터는 하루해가 더욱 짧아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저녁 해가 금방 지고 아침은 더디 온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다 못해 차갑기까지 하다. 날이 맑다가도 어느 순간 추위가 밀어닥칠지 모른다. 날씨가 출렁거리는 폭이 크다는 얘기다. 동양에선 앞으로 3개월여 동안을 겨울철이라 칭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입동 무렵이면 긴 겨우살이를 위해 여러 준비를 했다. 남자들은 짚으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얹고, 겨우내 쓸 땔감을 장만했다. 여자들은 김장하기, 시래기 말리기, 메주 쑤기 등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한 세대 전 만 해도 낯익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매우 드물다.

▲입동엔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미풍양속도 있었다.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을 대접하는 경로잔치를 마을별로 벌인 것이다. 동지나 섣달 그믐날에도 어김없이 열렸다. 한자로 풀이하면 ‘꿩·닭·쌀’인데, 원래 고을 사또 밥상에 올릴 반찬값 명목으로 받는 뇌물을 뜻했다.

그런 만큼 마을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려는 데서 기인한 풍속인 듯싶다. 이때가 되면 동네 사람들은 십시일반(十匙一飯) 돈이나 곡식을 냈다. 부자는 물론 논·밭 한뙈기 없는 가난한 집에서도 성의껏 출연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새삼 마음 따뜻해지는 세시풍속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날씨가 점점 추워질 게다. 그러니 쌀 한 포대, 연탄 한 장 등이 아쉬운 이웃들은 더 춥고 배고플 수밖에 없다. 서러움도 배가 된다. 홀몸 노인 등 어려운 이웃들의 겨울나기가 걱정이다. 이런 때 일수록 나눔의 손길이 절실하다. 그러려면 치계미 같은 풍속이 되살아나야 한다.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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