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삶의 연장선
죽음은 삶의 연장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옥란, 동녘도서관 글따슴 회원

베이비부머 세대인 우리는 곧 칠십대를 맞는다.

출산율 저하가 심각한 즈음에 비해 우리 세대는 다자녀가정이었음에도 부모님을 대부분 요양병원에 모시고 있다. ‘열 자식 한 부모 못 모신다’는 속담이 헛말이 아니다.

아버지께서도 요양병원에서 소천 하셨고 그곳에서 가까운 장례식장에 모셨다.

장례 절차는 수월했으나 바뀌지 않은 장례문화는 더 세밀해진 자본주의 위상인 돈의 논리에 편승해 치러졌다.

죽음이 삶의 연장선상에 이르기 위해선 건너뛸 수 없는 절차가 필요했고 부모님 죽음이란 절체절명적 존재감은 대안 없는 수동적 무력감을 요구했다.

누적된 일상의 피로감과 눈부신 조명으로 꽉 찬 빈소는 고인의 명복을 기원하는 침묵을 방해했고 적조했던 먼 일가친척의 고달픈 일상사를 펼쳤다.

건조하고 짧은 일회성에 불과한 추념과 음식 쓰레기 양산이 장례식장의 일상적 단면이다.

형식보다 인연을 중시하는 작은 결혼으로 변하는 혼인문화와 현격히 비교되는 장례문화다.

결혼식장을 장식한 꽃들은 하객에게 나눠 축복으로 이어지만 장례식장 화환은 쓰레기가 됨에도 더 많이 주고받는다. 우리 세대의 하나나 둘뿐인 자녀가 감당키 어려운 일들이다.

직계가족만으로 생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나누며 삶 한 자락에 모실 수 있는 작은 장례 문화가 절실하다. 관혼상제 미덕은 주고받는 것인데 내 경우는 아들 결혼 후 바로 서울을 떠나 제주에 정착했으므로 본의 아니게 받기만 한 꼴이 되었다.

당연히 부고는 알리지 않았으니 작은 장례 문화 시도로 한 걸음 내디딘 셈인가?

그럼에도 동생 지인들 문상이 고마웠다. 참으로 이율배반적 안도감이었지만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여겼다.

힘든 시간 같이해준 분들께 제주 오메기떡을 감사 선물로 보냄으로 아버지와 이별 수순을 마쳤다.

백세는 못 채우고 떠나셨지만 바람결에 햇살 온기로 함께 하심을 느낀다.

실감할 수 없었던 백세시대 예감은 소천하신 아버지와 내가 사는 반디마을 팔순 부부 일상을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도란도란 마주보며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반디마을 특성상 타인 도움 없이 두 분이 건강한 일상을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도 팔십대 후반까진 아주 건강하셨다. 구십대 녹내장으로 실명하신 후 가파르게 건강을 잃으셨고 2년여의 연명 치료로 삶을 유지하셨다.

건강하셨을 때 연명 치료 거부 표명을 하셨음에도 우린 따르지 못했지만 하나뿐인 아들은 따라 주기를 바란다.

돌아가시기 전 호흡곤란으로 사경을 헤매다 기다렸듯 썩 좋은 날씨에 운명하셨다.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여건상 마음은 조급했지만 오히려 신앙적 배웅을 할 수 있었다. 대립각이 팽팽했던 남북한 사이 미미한 평화가 흐르는 시작점을 프란치스코 교종의 북한 초청 시 방문이라 해도 무리한 표현이 아닌 때다. 가톨릭 형식에 따른 배웅으로 선친께서 평화로운 영면에 드셨음을 실감하는 나날이 감사하다. 두말 할 나위 없이 자유로운 신앙 선택에 따른 순명적 평온이다.

의료보험공단에서 실행하는 연명치료거부사전의향서 작성 절차를 온전히 따른 것과 죽음은 삶의 연장선일 뿐이라던 평소 지론이 아버지를 통해서 온전한 내 것으로 자리 매김 되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