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문화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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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호, 21C제주유교문화발전연구원장/수필가

공자사상의 핵심은 인(仁)이다. 효는 인에서 출발한다.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인이라 했으니,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자신을 극복하고 예를 되찾으면 그것이 곧 인이라는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자손들이 6∼7세가 되면 셈하는 법, 천자문, 계몽편을 가르치고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우쳤다. 또한 10살이 되면 밥상예절, 좌석예절과 효에 대한 마음가짐을 가르쳤다.

어렸을 때부터 엄하게 키운 자식일수록 부모에 대한 효심은 지극한 법이 다. 천륜이란 부자간, 형제지간에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를 말한다. 그러하니 효행은 자식으로서 피할 수 없는 의무이다. 부모가 돌아가면 행적을 살펴 3년 동안에는 부모의 도(道)를 함부로 고치지 않으면 효성스럽다고 했다. 3년 상기 동안에는 조석으로 상식을 드리고 상기가 끝나면 제사를 지내는 것이 효행의 시작이었다.

그러하니 자식의 효는 자기를 낳아 주고 자신의 능력으로 살 수 있을 때까지 보살펴 준 부모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책임지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가족제도 유지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그나마 효행의 뿌리가 아직은 밑바닥에 남아 있으니 가족해체의 방패막이요 사회통합의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삼무정신 속에는 효심이 녹아 있다. 그렇지만 핵가족시대, 1인가구가 30%라 한다. 나머지 가정에서조차 한두 명의 자녀가 고작이다. 형제자매가 아옹다옹 살았던 시대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못내 아쉽다.

그뿐 아니다. 아파트는 칸막이로 가려 있다. 옆에는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주거 공간으로 변모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단독주택형태의 주거문화는 이웃 간의 소통이 활발하고 수눌음 정신과 조냥 정신으로 집안의 대소사까지 돌보던 미풍양속은 사라져 버렸다. 나 홀로 성장과정은 서로 눈치 보는 일이 없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누구의 간섭도 없이 진행하는 세대다. 그러하니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부모가 따라주지 않으면 불만으로 표출한다. 심하면 인륜을 저버리는 극단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는 현실이다.

고려장이라는 설화가 있다. 고구려 때(?), 늙고 병든 이를 살아 있는 채로 묘실(墓室)에 옮겨놓고 죽으면 그곳에 장사지내는 풍습이었다. 어느 날 아들이 늙은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험준한 산골짜기로 향했다. 어머니를 묘실에 내려놓고 돌아서려는데 손자 녀석이 한마디 거들었다. “아버지! 지게는 저가 지고 내려가겠습니다. 그래야 아버지도 늙으면 이 지게로 여기에 모시려고요.” 이때부터 고려장 풍습이 사라졌다는 설이 있지만 잘 모르는 일이다.

시대의 흐름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효(孝) 문화도 예외가 아니다. 본래의 효심은 간 곳이 없고 자기 부모보다 외려 남의 부모를 섬기는 이상한 풍토가 생겼다. 한쪽이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효 문화는 올바른 효행이 아니다. 사회봉사라는 대의명분에 휘둘리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유치원 비리의혹이 정치권으로 비화되고 있다. 설마 효 문화의 발원지, 양로원이나 요양원은 아니기를 바란다. 아무리 물질만능의 효행이라도 천륜을 넘지 못한다. 정신위주의 효행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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