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만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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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논설위원

학교를 나선다. 무심코 평소에 다니던 길로 간다. 사실 오늘은 병원에 들러야 한다. 그래서 출발하면서 생각도 했다. 그러나 막상 길을 나서서는 평소에 다니던 길로 가고 있다. 방향을 돌려 병원에 갔다가, 집에 도착하여 평소대로 또 하루를 살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일이 잦다. 기억력이 감퇴되어 그런 것일까? 아니면 워낙 생각하는 일이 많아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여 그러는 것일까?

길을 가면서 수없이 많은 것을 본다. 아니다. 수없이 많은 것이 보인다. 보이는 것을 보았으나 본 기억이 없다. 반드시 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본 것만이 기억에 있다.

길눈이 어둡다. 미련해서가 아니다. 나는 본시 길에 관심이 없다. 그 길을 가는 것은 오로지 목적지에 도착하여 그 일을 하고자 함이니, 어디를 거쳐 가는지, 가는 중간에 무엇이 있는지 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난 갔던 길도, 반드시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다시 갈 수 없고, 도움을 받으면서도 또 지난번의 실수를 되풀이 하고는 한다.

그래도 매번 잘 찾아가는 것은 내가 모르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전적으로 내비게이션에게 나의 길을 맡기기 때문이다. 모르면 물으면 된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책임질 일은 온 신경을 곤두세워 그 일에 집중한다. 그러다가 생각이 길을 잘못 들면 헛생각을 한다.

가령 드론을 보면서 미래에는 하늘에 집을 지을 수도 있겠다거나, 공기오염을 생각하면서 바다 속에 집을 짓고 살면 공기가 깨끗할 것 같다거나, 원자폭탄이 발사되었을 때 전파를 이용하여 그 투하 지점을 발사 원점으로 돌릴 수 있다면 굳이 원자폭탄을 만들 필요 없이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국면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등, 수없이 많은 헛생각을 한다. 물론 그것이 지금은 헛생각이지만 훗날에는 결코 헛생각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난날의 것을 기억하는 것보다 아직 없는 것을 생각하며 그것이 그 길로 가는 것을 보며 즐겁다.

그래서 모두가 가는 길과 같이, 이미 확정된 정보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리고 혹 나에게 입력된 정보가 잘못된 것이 있을 때는 언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필요하면 사전이나 데이터를 찾아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대신 없거나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다.

남들(데이터)은 모두 ‘士’가 선비라고 하지만 ‘남자’라고 해석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表意文字는 반드시 表義文字라고 써야 옳다는 등, 모두의 견해와 다른 말을 지껄인다. 마치 모두 지구가 평평하다는데 나 홀로 둥글다고 지껄이는 것과 같이…. 그래서 이단이요, 미친놈이다.

과거에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하였지만, 미래에는 그것은 기계가 한다. 인간은 그것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세상은 비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에 의해 변화된다. 그래서 남의 말 특히 미친놈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본다(見)는 것은, 자기의 견해(見解)에 따라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는 것이고, 구분하는 것은 아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정보를 가지고만 있는 것은 알아도 아는 것이 아니다. 마치 창고에 쌀이 가득하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으로 밥을 짓지 못하면 바르게 아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앞에 놓여있어 보인다고 본다고 할 수 없고, 보지 못하니 아는 것도 아니다.

한 치 앞의 일이 그렇게도 보이지 않습니까?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십니까? 생각 좀 하고 사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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