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대한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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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랑, 수필가

어느 날 친한 후배가 제게 다가와서 조심스레 말을 건넵니다.

근래에 어느 자리에서 A를 비난 한 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뜬금없는 질문에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A가 그 후배에게 하소연을 한 모양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비난했던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오해가 생긴 것 같습니다. 여태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지만 언젠가 오해가 풀리길 소망해 봅니다.

요 며칠 전 아파트 골목을 걸어가는데 초등학교 5, 6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 둘이서 소리소리 지르며 말싸움을 합니다. 조금 있으면 손이 올라갈 정도로 위태해 보였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제가 끼어들었습니다.

그중 한 녀석이 하소연을 합니다. 실수로 친구의 손에 든 핫도그를 떨어뜨렸는데 저 친구는 믿지 않고 화를 낸다고 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친구는 악을 쓰며 말을 합니다. 실수가 아니고 일부러 핫도그를 떨어뜨렸다고 말입니다. 한 치 양보도 없이 거친 말들이 쏟아집니다. 초등학생이 맞는가 싶을 정도입니다.

처음부터 그 정황을 보지 못해서 듣고 있는 저도 답답합니다. 한 녀석은 실수라 하고, 한 녀석은 일부러 했다고 주장하니 말입니다. 이 팽팽한 광경 앞에서 얼른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한 녀석을 달래면 한 녀석이 쌩 하고, 그렇게 한참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너희 둘이 화해하지 않으면 나도 이 자릴 뜨지 못하겠다고 애원에 가까운 협박을 했습니다.

두 녀석의 손을 억지로 끌어다 악수를 시키고 마침 가방에 들어 있던 초콜릿을 꺼내 손에 쥐어 주며 동시에 “미안”이라고 하자고 주문했습니다.

마지못해 건성으로 했지만 내 말을 들어 준 녀석들이 고마웠습니다.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사그라진 모습을 보며 한숨 돌렸습니다. 녀석들과 씨름하느라 힘이 빠졌지만 위태한 상황을 모면했으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얼굴에 독기를 품고 쏟아내던 녀석들의 말들이 그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이 자유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자유로움이 때론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가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난무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인간관계에서 말이 중요하기는 하나 봅니다. 종교마다 말에 대하여 경고합니다.

불교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나온 말입니다.

“자기를 괴롭히지 말고 남을 해하지 않는 말을 해라. 사람은 태어날 때 그 입 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자는 말을 함부로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만다.”

가톨릭 사제인 토마스 머튼은 그의 ‘관상기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침묵으로 성인들이 성장했고, 침묵에 의해 하느님의 능력이 그들 안에 머물렀으며, 침묵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신비가 그들에게 알려졌다. 많은 사람들이 열렬히 찾고 있지만 침묵 속에 머무는 사람만이 발견한다. 많은 말을 즐기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비록 경탄할 것만을 말한다 할지라도 내부는 비어 있다. 무엇보다도 침묵을 사랑하라. 침묵은 입으로 표현할 수없는 열매를 너희들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말도 아름다운 꽃처럼 그 색깔을 지니고 있다는 말을 합니다. 살아오면서 내가 한 말에 대한 색깔이 궁금해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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