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변성근 선생의 기증 작품에 대하여
청원 변성근 선생의 기증 작품에 대하여
  • 제주신보
  • 승인 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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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 소설가·시인·수필가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1996년 8월 무더운 여름철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청원(靑園) 변성근(邊聖根) 선생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서귀포 중앙로터리 지하다방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청원은 뜻밖의 제의를 하였다. 나는 재산은 사회에 환원할 게 없지만 그동안 집념을 다 바쳐 모아둔 예술품을 사회에 환원하겠노라고 하였다. 그러자 저는 “그 소중한 문화유산을 자손에 전하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혹시 나중에 후회가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자, “아니오. 가족보다 사회에 환원하는 게 영원한 소장이 될 것이요.”라고 거침없이 대답을 하였다. “그런 결심을 하였으면 너무나 장한 일입니다.”라고 나는 적극 동조했다.

그 며칠 후 한기팔·고 오경숙·김계담·김동철 선생 등과 이 문제를 깊이 의논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기증작품 관리위원으로 여러 유명인사가 참여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작품들을 정리해 청원이 태어나고 일생 살아온 서귀포시에 1996년 10월에 기증하게 되었다.

그 작품들을 살펴보면 소암 현중화 선생이 쓴 ‘취시선(醉是仙)’, 일중 김창현 선생의 ‘여수무량’, 서봉 김사달 선생의 ‘이회훈’, 해정 박태준 선생의 ‘조현접성’, 탐허 큰스님의 ‘섬진불서함’, 서옹 큰스님의 ‘수처작주’ 등 34명의 유명 서예가가 쓴 병풍 및 휘호 60점, 남농 허건 화백의 ‘송횡지도영(松橫枝倒影)’, 변시지 화백의 ‘해변촌락’, 백포 곽남배 화백의 ‘목련’, 소치 허유 화백의 ‘연’, 소봉 박희규 화백의 ‘죽색청매색’ 등 29명의 유명 화가가 그린 병품 및 회화 42점, 소암 현중화 선생이 ‘부부절(夫婦節)’, 해정 박태준 선생의 ‘가거녹수’, 경암 김상필 선생의 ‘운개만국’을 비롯한 3명이 새긴 판각 4점 등 총 106점이었다. 이전에 이미 기증된 작품도 서·화·판각을 포함해서 25점이나 되었다.

특히 소암 현중화 선생의 휘호를 많이 받게 된 것은 청원이 지필묵을 준비하고 선생을 자주 수행하였기 때문이었다. 소암선생은 자연에 매료될 때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지필묵을 찾고 즉흥적으로 힘찬 필획을 휘둘렀다. 특히 명작 ‘취시선’을 청원이 소장하게 된 것은 소암선생이 서귀포의 국일관에서 즉흥적으로 도배한 벽면에 ‘취한 것이 곧 신선이다’라는 ‘취시선’을 쓰셨다.

후일 청원이 건물주에게 사정사정하여 공사비를 주고 그 벽면을 부수어 조심스럽게 휘호를 한 도배지를 떼어 냈다. 그런 후 배접을 하고 선생의 낙관을 받았다. 이럴 정도로 명사들의 예술품 하나하나가 어려운 경로를 통하여 얻어진 것이지 쉽게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청원은 한평생 혼신의 정력을 쏟아 전국에서 수집하고 소장해두었던 귀중품을 회갑을 맞아 서귀포시 문화 창달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았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갔고 청원도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어 2009년 음 1월 30일 타계했다. 아무쪼록 청원의 고귀한 뜻이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서귀포시 문화 창달에 기폭제가 되기를 당시 작품기증에 관여했던 한사람으로서 바라 마지않는다.

그런데 하나 여운이 있다면 지금까지 강산이 두 번 변했으나 기증작품 전시회 한 번 없이 지나간 것이 아쉽기만 하다. 서귀포시는 이제라도 청원의 뜻에 따라 여러 사람이 감상을 할 수 있게 청원 기증 작품을 한데 모아 특별전시와 그분이 뜻을 기리도록 조그마한 설명문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게 간절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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