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제주 생물권 보전지역
졸참나무·서어나무·삼나무·편백나무 등 수종 다양해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 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되는,
기어이 떨어져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鬱鬱蒼蒼)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간격> 안도현
늦가을의 여운이 짙다. 빈 가지들 사이로 간간히 붉힌 단풍들이 눈길 끈다.
사려니 숲, 삼나무가 우거진 미로 숲길에서 난장을 펼친다. 연 이틀 가을비로 마음 졸였는데 바람난장을 펼치기에 이 보다 더 좋은 날이 있을까. 하늘은 높고 눈부시게 푸르다.
‘사려니’는 ‘신성한 숲’ 혹은 ‘실 따위를 흩어지지 않게 동그랗게 포개어 감다.’라는 뜻으로 이 숲길을 거닐면 상쾌한 삼나무 향에 젖어든다. 2002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제주 생물권 보전지역이기도 하다. 일 년에 한 번씩 사려니 숲 에코힐링(Eco-Healing) 행사가 열린다.
사려니 숲길에는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서식한다. 제주의 숨은 비경 중 하나로 훼손되지 않은 본래 숲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여행자들은 물론 도민들도 즐겨 찾는 장소이다. 사회자 김정희가 공연에 앞서 사려니 숲에 대한 간단한 해설을 한다.
이어서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황경수 교수가 ‘산 노을’, ‘석굴암’, ‘청산에 살리라’를 테너와 베이스로 넘나들며 열창한다. ‘먼 산을 호젓이 바라보면/누군가 부르네/산 너머 노을에 젖는/내 눈썹에 잊었던 목소린가….’ 울울창창한 삼나무 숲 사이로 내비치는 고운 햇살이 저절로 무대의 조명담당을 자처한 셈이다. 화음을 넣으며 노래 중간에 끼어드는 까마귀 노래도 정겹다.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몰랐다/나무와 나무가 모여/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생각하지 못 했다….’
안도현의 ‘간격’ 시를 연극인 정민자가 낭독한다. 표정과 목소리가 낭창하다. 삼나무 사이마다 좁거나 넓은 간격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 숲에 들어서야 새삼 느낀다.
흰 드레스에 꽃을 든 무용가 장은이다. 삼나무들 사이로 사뿐히 나타나서 백목련 한 송이처럼 ‘숲의 숨’ 주제로 펼치는 작품이다. 삼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와 장은이 펼치는 춤사위의 숨결 마디 사이로 다시금 숨을 고른다.
※다음 호에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글=조영랑
그림=유창훈
사회=김정희
무용=장은
시낭독=정민자
사진=허영숙
음악=황경수·정욱성·서난영
음악감독=이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