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는 것들
잊히는 것들
  • 제주신보
  • 승인 20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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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쌀풀 자루를 조물조물 치대자 풀물이 뽀얗고 걸쭉하게 됐다. 올이 고운 누빈 삼베 요 깔개와 모시 홑청에 풀을 먹여 가을 햇볕에 널었다. 꾸덕꾸덕 마를 즈음 네 귀퉁이 반듯하게 잡아당겨 개었다. 보자기에 싸 발로 오랫동안 밟아 올여름 이부자리 손질을 마무리했다.

열대야는 에어컨 바람으로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생각다 못해 한동안 장롱 속에 잠자던 삼베 깔개와 모시 홑청을 꺼냈다. 부드러운 질감의 이부자리가 살갗에 달라붙는 게 성가셨다. 어릴 때부터 익숙한 잠자리로, 얼마 전까지 고집스럽게 하던 일인데 힘에 부쳐 손을 놨었다.

가슬가슬한 깔개 위에 몸을 뉘고, 바람이 솔솔 내통하는 모시 홑이불을 덮었다. 여름동안 잠자리였던 고향 대청마루가 눈에 선해, 그리움이 왈칵 밀려왔다. 땀으로 근질거리던 등이 개운해 절로 눈이 감겼다.

요즈음은 옷감이 수시로 유행을 타며 품질이 고급화되었다. 세탁하기도 편리해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겐 그만이다. 천연섬유인 모시와 삼베, 명주나 무명은 손질이 번거롭고 까다롭다. 그러나 그 가치는 변함없고 유행이 타질 않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깊게 배어 있는 것들이다. 요즈음 젊은 주부들에겐 사뭇 낯선 일이다. 단지 손이 많이 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옛 여인들의 손끝에서 빚어지던 고유의 생활 풍속이 대부분 잊힌 지 오래다.

결혼 예단으로 여러 채를 마련한 이부자리를, 몇 번을 망설이다 집수리를 핑계로 정리했다. 그중에 차마 버릴 수 없어 이불 한 채만 남겨 두었다. 맏손녀를 위해 할머니께서 손수 목화를 심고 거두었다. 밤이면 씨아를 돌리고 솜을 태워 마련해 주신 솜이불이다. 연분홍 양단에 초록 깃을 달고, 광목으로 홑청을 씌워 신혼 이불로 꾸며 주셨던, 소중한 유품으로 간직하고 있던 이불이다. 겨울 살림이 서투를 텐데 이불이라도 두툼해야 덜 추울 거라던 말씀이, 눈을 줄 때마다 떠오르곤 한다.

오랫동안 솜이 눌려 무겁던 이불을 솜을 타 새로 꾸몄다. 겉감도 손질하기 편하게끔 꾸몄다. 가볍고 보온성이 좋은 이불이 있지만, 가끔 겨울철에 이 솜이불을 꺼내 덮는다. 두툼하고 묵중한 눌림이 포근하고 안정감을 준다. 몸살기가 있거나 허허로워 깊이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밤에 그만이다. 콩물들인 장판 틈으로 배어 나오던 매캐한 연기와 뻣뻣한 홑청에서 풍기던 쌉싸래한 쌀풀 향기, 할머니의 손길에서 빚어지는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종종 예전 생활방식을 고집할 때가 있다. 그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이다. 길쌈을 하던 동네로 언덕배기 잔디밭에 필로 길게 풀어 말리던 광목, 흰색과 초록의 대비는 눈부시게 선명했다. 여러 집에서 하얗게 펼쳐 널어 장관이었던 긴 광목의 펄럭임. 양잿물에 삶고 햇볕에 바래기를 여름내 이어지던 풍경, 여간 공이 드는 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풀을 먹여 홍두깨에 말아 다듬이질로 마무리를 했다. 밤마다 품앗이로 장단을 맞추던 경쾌한 리듬의 다듬이질은, 때가 잘 타지 않게 하는 지혜로운 작업이었다. 어쩌면 삶이 고단한 여인들의 속 풀이도 되었으리라.

햇빛이 좋은날 솜이불을 내어 넌다. 바람과 해를 품어 보송보송하게 부풀어 올랐다. 나이 들면서 불편하던 것조차 그립고 아쉽다. 무엇이든 사라지는 것은 되돌리기 쉽지 않다. 우리의 소중한 풍속이 영영 사라질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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