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갈등’
‘일일갈등’
  • 제주신보
  • 승인 2018.11.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국제관계학부 특임교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의 파장이 일본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미 한국에서도 보도된 것처럼 아베 총리나 고노 외무상은 과격한 표현으로 한국 대법원과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요미우리, 산케이 등의 보수나 극우 성향의 일간지들은 물론이고 비교적 리버럴한 언론으로 여겨져 온 ‘아사히’, ‘마이니치’, ‘닛케이’ 등 일간지도 ‘오늘까지 이룩해 온 이웃나라 간의 관계를 망치게 할지도 모른다’(아사히),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한일)조약의 일방적인 해석 변경’ (마이니치)이라고 하는 등 비판적이고, 광복절 등에서 징용피해자 문제가 미해결이라는 소신을 밝힌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마이니치, 닛케이).

인터넷상에는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한국을 비난하는 문자로 넘쳐 있다.

방탄소년단이 일본 텔레비전 출연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최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혐한(嫌韓) 공세가 보다 신속하고 조직적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그런 한편 대법원 판결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일본에서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남남갈등’이 있듯이 일본에는 역사문제를 둘러싸고 ‘일일갈등’이 있다.

일본 국내의 변호사유지들이 대법원의 판결을 전면적으로 지지하는 성명(변호사 98명이 이름을 올림)을 발표한 것도 그런 사례로 들 수 있다(11월 5일).

성명은 ①문제의 본질이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점 ②일본의 최고재판소가 중·일 간의 배상문제에 관해서 외교보호권은 포기됐지만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소멸됐다고까지 보지 못 한다(대법원 2007년 4월 27일 판결)고 판시했던 사실. ③중대한 인권침해에 기인하는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국가가 일방적으로 소멸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은 현재 국제인권법의 이해 수준에 어긋나지 않다는 등 일본 정부의 주장을 하나하나 집어서 이로정연(理路整然)하게 반론하고 있다.

또한 중국인 강제징용에 대해서는 일본 업체가 책임을 갖고 있어 기업이 자금을 지출해서 기금을 설립해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거론하면서, 신일철주금속도 징용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호사들의 움직임과 더불어 ‘일본제철 징용공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등의 시민단체도 신일철주금의 임원이 2012년 6월에 열린 주주총회에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는 입장을 표명한 사실을 밝히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냉전체제 분괴전후로부터 일본 총리로서 과거의 침략행위를 반성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가 있었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해자로서의 자각을 전제로 한 평화주의의 조류가 일본에서 우세했지만, 2000년대 이후는 역사수정주의의 조류가 우세한 시대가 지속되고 이다.

하지만 평화주의 조류도 일본 사회 공론의 장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그러한 조류에 힘을 실어 줄 만한 합리적이고 일관된 정책 대안을 제시해줄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