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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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국립국어원은 ‘갑질’을 이렇게 풀이한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에게 오만무례하거나 이래라저래라 제멋대로 구는 짓.’ 저만 잘난 줄 알고 ‘을’이라면 말부터 놓고 우월한 지위를 악용하는 행위다.

영어로는 뭐라고 할까. 미국 주간지 애틀랜틱이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의 여파를 다루며 갑질이라는 표현을 ‘gabjil’이라 표기했다. 영어로 대략 ‘하이 핸디드니스(high-handedness)’ 정도의 뜻이라고 풀이했다. 한국말로는 ‘고압적 행태’쯤이다.

우리 사회에선 오래전부터 대기업의 하청업체에 대한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에 주로 쓰였다. 그러더니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 업주, 고객과 판매원 같은 서비스 노동자, 직장 상사와 부하 관계로까지 확산됐다.

▲근래 수면 위로 드러난 웹하드업체 회장의 폭행은 직장 내 갑질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보통 기업에선 대표가 전권을 가진 경우가 많아 문제가 생겨도 공론화하기 어렵다는 거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2500명 중 직접 피해를 봤다는 비율이 66%에 달했다. 3명 중 2명꼴이다. 협박과 모욕 등 정신적 갑질(25%)이 가장 많았다. 과도한 업무(21%), 왕따(16%) 등이 뒤를 이었다. 올해 초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3%가 상사에 의한 갑질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문제는 직장 내 갑질을 법적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폭행과 폭언을 제외한 괴롭힘과 왕따 등은 현행법상 처벌 근거가 없어서다. 피해를 호소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금도 여러 계층에서 다양한 갑질이 횡행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대다수 피해자들은 그에 저항했을 때 추가적 불이익이 두려워 의도된 무시를 하고 있을 뿐이다.

직장 내 갑질은 ‘사람을 바늘로 찔러 죽이는 일’과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게 누적될수록 피해자의 고통이 가중된다는 의미다.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자살을 기도하는 것도 그 같은 맥락이다.

다행히 우리 사회도 이제는 직장 내 갑질을 저항하고 신고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게다가 국회에서도 그런 적폐를 막는 법제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한다. 근래 정부가 숨돌릴 겨를 없이 밀어붙이는 ‘적폐 청산’의 메스야말로 여기에 들이대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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