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등장한 ‘자기책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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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정, 일본 치바대학교 준교수

3년 4개월 동안 시리아무장세력에 의해 억류됐다가 풀려난 프리랜서 언론인 야스다 준페이(安田純平)씨를 둘러싸고 일본 사회는 또 다시 ‘자기책임론’ 논쟁이 불붙고 있다. 한국인도 분쟁지역에서 억류됐다가 풀려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한국도 자기책임론이 제기됐던 만큼 이웃나라의 논쟁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야스다씨는 귀국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많은 분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며 머리 숙여 사과했다. 일본 정부의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분쟁지역에서 취재활동을 벌이다 피랍돼 정부와 국민에게 폐를 끼쳤다는 비판 여론에 대한 사과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사과를 둘러싸고 과도한 비판이라는 여론도 많다. 가족에게는 민폐를 끼쳤을지 모르지만 국민들이 억류돼 있던 3년 4개월 내내 그를 걱정한 것도 아니고 알 권리를 위해 위험을 무릅쓴 언론인에게 사과까지 하게 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논쟁은 2004년에도 있었다. 당시 이라크에서 이슬람 과격파에 의해 일본인 3명이 유괴됐고 일본 정부의 협상으로 풀려났다. 당시 많은 언론들은 자기책임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데서 온 무모하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정부와 관계기관,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안겨준 것에 사과를 해야 한다는 논조를 쏟아냈다. 자기책임이라는 말이 2004년의 유행어가 될 만큼 당시의 논쟁은 뜨거웠다. 그때의 자기책임 논쟁이 14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단지 14년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매스미디어와 정부 관계자가 중심이 돼 쏟아내던 비난이 지금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상에서 일반인이 중심으로 돼 분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논쟁의 장과 주체가 바뀐 것만이 아니다. 누군가에 의해 악의적으로 만들어진 가짜 정보와 뒤섞인 채 비판 여론이 퍼져나가고 있다.

14년 전과 달라진 점은 또 있다. 단순히 자기 책임의 찬반 논쟁만이 아니라 왜 이러한 논쟁이 일본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냉정한 원인 분석이 많아졌다. 일본사회에 만연한 신자유주이적 사회관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그중 하나다.

일본에서 ‘자기책임’은 원래 1980년대 버블경제시대에 규제완화로 인해 리스크가 있는 금융상품에 투자해 소비자가 손해를 보는 것에 대한 자기책임론으로 등장했던 말이다. 그것이 2004년 인질 사건을 계기로 정치가들에 의해 사회적, 정치적인 말로 둔갑해 소수와 약자의 입장을 비난하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다.

2004년 당시 이라크에서 유괴됐다가 풀려났던 이마이 노리아키(今井紀明)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최근 자기책임이라는 말이 타인을 부정하고 배척하는 말로 둔갑돼 사용되는 사회분위기를 걱정했다. 이마이씨의 말은 사회의 정해진 질서에서 벗어나는 소수를 부정하고 또 만약 그 소수로 인해 다수가 희생돼야 할 상황이 온다면 소수를 과감하게 끊어내도 된다는 일본 사회의 풍조를 걱정하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자기책임론을 주장하는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 중에는 해외에 나가 난민을 지원하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 난민이 발생하는 지역은 분쟁지역인 경우가 많고 활동 중에 자신이 피랍자가 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다수의 입장에서 난민을 지원하는 것만 생각할 뿐 정작 자신도 난민이 되거나 피랍자가 되어 소수 입장이 될 수 있다는 상상은 잘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상력의 부족이야말로 자기책임론을 확산시키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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