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비기나무-두통, 두면부 질환에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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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열, 한의사·제주한의약연구원장

순비기나무는 제주의 해안가에서 자라는 대표적 자생식물이다. 해변의 자갈돌 틈이나 척박한 모래땅에서도 잘 살아나간다.

이맘 때면 녹두알 크기의 까맣고 동그란 씨앗을 볼 수 있는데, 공 모양의 단단하면서도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 비벼보면 베어 나오는 독특한 향이 예사롭지 않다.

이 순비기나무(Vitex rotundifolia Linnefil) 또는 만형(Vitex trifolia Linne)의 잘 익은 열매가 한약재 만형자(蔓荊子)다.

만형자는 발산풍열약(發散風熱藥)에 속하여 풍열을 발산한다. 풍열(風熱)은 오한(惡寒)보다 발열이 심하고 설태(舌苔)가 노랗게 끼며, 맥박이 빠르고 갈증이 나는 등의 열성 외감병을 의미한다. 만형자는 약성이 두면부로 향하여 풍열로 인한 두통, 어지러움 등의 증상을 치료하는 데 뛰어나다.

특히 간경(肝經)의 풍열을 풀어주어 눈이 어지럽고 붉게 충혈 되거나 눈물이 계속 나오는 등 안과 관련 질환에 사용된다.

이외에 거풍조습(祛風燥濕)의 효능도 있어 뼈마디가 쑤시는 완고한 관절염이나 구련(拘攣) 증상 등에 응용된다. 구련(拘攣)이란 팔다리의 근육이 오그라들고 땅기고 뻣뻣해지면서 경련이 일어나는 병증이다.

 

순비기나무 꽃
순비기나무 꽃

순비기나무는 잎도 약재로 활용할 수 있다. 찧어서 외용으로 사용하면 타박상 치료에 좋고, 달여서 복용하면 신경성 두통에 효과적이다.

만형자에는 진정지통(眞靜止痛)시키는 약리작용이 있어 신경성 두통과 고혈압으로 인한 두통에 효과 있다는 근래의 보고도 있었다. 단, 혈허(血虛)로 인한 두통이나 위가 허약한 자는 복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순비기’는 해녀가 물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의 제주어 ‘숨비기’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줄기가 모래땅에 숨어 뻗어나가는 성질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제주에는 예로부터 만형자로 베개를 만들어 쓰면 아이는 잠을 잘 자고 어른들은 두통이 사라진다는 민간요법이 있다. 고문헌에 의하면 대부분의 종자는 묵직하여 하행(下行)하는 성질이 강한 데 반해 만형자는 무게가 가벼워 위로 향하는 성질이 있다고 약성이 두면부로 향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 바닷가 해변에 흔히 보이는 순비기. 늘 마주치는 이 식물에 열매가 열린다는 것을 우리는 의식해 본 적이 있을까, 혹은 가끔이라도 잎을 따서 향을 맡아 본 적 있을까.

해안가에는 아직 까맣게 익은 순비기 열매가 꽤 있을 터이다. 지금이라도 한 알 따서 손안에서 느껴지는 가벼움과 톡 쏘는 듯한 향을 맡아보자. 약재로서의 기운이 인식된다면 그동안 본의 아니게 숨어 지낸 ‘순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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