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탐라의 예술혼, 오현 정신 거쳐 길이 빛나리라”
(65)“탐라의 예술혼, 오현 정신 거쳐 길이 빛나리라”
  • 고동수 기자
  • 승인 2018.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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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옥, 위봉사 포교당 일광사 창건…전쟁 전사자 위령제 성대히 거행
기황후, 순제 제2의 황후…탐라에 사자 파견해 수정사 창건·목마장 설치
길버트 소령, 제주 교악대 지원…오현고에 관악기 기증·교악대 창설 도와 
길버트 소령(사진 맨 오른쪽)이 오현고등학교 교악대 학생들과 음악교사인 고봉식 선생(사진 맨 왼쪽)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길버트 소령의 노력으로 1952년 9월 21일 창설된 오현고 관악대는 국내 학교 관악대 중 최고의 역사를 지니며도내외에 명성을 떨쳤다. 출처=제주특별자치도 刊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
길버트 소령(사진 맨 오른쪽)이 오현고등학교 교악대 학생들과 음악교사인 고봉식 선생(사진 맨 왼쪽)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길버트 소령의 노력으로 1952년 9월 21일 창설된 오현고 관악대는 국내 학교 관악대 중 최고의 역사를 지니며도내외에 명성을 떨쳤다. 출처=제주특별자치도 刊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

기산옥奇山玉불교지도자. 제주도 성산포 대본산大本山 위봉사威鳳寺의 포교당인 일광사日光寺는 창건주 기산옥과 포교사 송종수宋宗秀의 진력으로 1937년 봄에 창설됐다.

중일中日전쟁이 발발하자 포교사 송종수의 적성赤誠으로 신도 60여 명이 1원씩 모아 일본의 미일전쟁 승리를 위해 소위 무운장구武運長久의 기원제祈願祭를 성대히 거행했다.

19371117일에도 소위 무운장구 전사자戰死者 위령제를 거행했는데 각 행사 때 남은 잔금 1015전과 538전을 모아 면사무소에 헌납했다.

1938년에는 기산옥 화상和尙의 지도로 29일부터 7일간 계속 여러 신도가 한마음으로 소위 국위선양 무운장구 기도를 했다. 또한 기산옥과 감원監院 김영두金榮斗, 부인회장 황선악黃先岳 등이 솔선해 일반 불교회원과 협력해서 소위 국방헌금을 모집하기로 하고 두 차례 두타행頭陀行<탁발>을 실행해 거둔 550전을 헌납했다.

기황후奇皇后의 사자가 세운 제주시 삼양1동 원당사지 안에 있는 불탑사佛塔寺 오층석탑.
기황후奇皇后의 사자가 세운 제주시 삼양1동 원당사지 안에 있는 불탑사佛塔寺 오층석탑.

기황후奇皇后()고려 기자오奇子敖의 딸로 원나라 순제의 제2의 황후. 몽고 이름은 완자홀도完者忽都이다.

원실의 궁인宮人으로 있었는데 순제順帝=惠宗의 총애를 받아 몽고인 이외에는 황후를 삼지 말라는 가훈을 깨뜨리고 제2의 황후로 책봉되었다.

1300(충렬왕26) 기황후는 탐라군민 달노화치총관부耽羅軍民達魯花赤摠管府의 수장을 역임한 원나라의 탑랄적塔剌赤을 제주에 파견했다.

수산평首山坪(성산읍 수산)에 목마장을 설치했고 소, , 낙타, 노새, 양 등을 방목해 크게 번식시켰다.

이 해에 또 탑랄적으로 하여금 도근천都近川(제주시 외도) 서안에 기황후가 수정사水精寺(일명修淨寺)를 창건하도록 하고 동불銅佛을 중국에서 들여왔다.

이 무렵 기황후의 탐라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으며 이 수정사는 원당사元堂寺·법화사法華寺와 더불어 탐라의 3대사찰三大寺刹로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명찰이었다.

고려 말의 시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은 수정사의 번창 융성함을 보고 도근천퇴제수방都近川頹制水坊 수정사리역창리水精寺裡亦滄浪이라고 했다.

기황후는 탐라에 대한 지원이 컸으며 황태자 애유식리달렵(愛猷識里達獵)’을 낳아 원실의 황통皇統을 잇게 한 것을 비롯해 당시 기황후의 세력은 원말元末 30년간 원실에서 융성이 극했다.

한편 기황후는 궁중에다 고려 미인들을 많이 두어 집정 대신들에게 배필로 삼게 해 한때 북경의 고관 귀인들은 고려의 여자와 결혼하여야 명가가 된다는 관습까지 생기게 됐다.

고려시대 사찰 원당사元堂寺’=원나라의 기황후가 태자太子를 낳기 위해 불공을 드렸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제주에는 고려시대 비보裨補사찰로 법화사와 수정사·존자암이 있어 제주불교도 국가적 지원 아래 융성했음을 알 수 있다.

제주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원당사<佛塔寺> 오층석탑은 고려시대 양식의 석탑으로 보물 제1187호로 지정됐다.

길버트1930~1998, 음악가. ‘길버트(Gilbert, Charles E.)’는 한국전쟁 당시의 미국 군인. 음악과 교수. 제주의 교악대校樂隊 지원자. 1

9506·25 이후 미군美軍 C. A. C. 제주지원단 부사령관으로 부임한 길버트 소령은 제주농업고등학교 및 제주중학교 교악대를 지원하고 특히 악대가 없던 오현고에 신호나팔 등을 기증하면서 교악대 창설을 서둘렀다.

길버트는 미국 오하이오(Ohio) 주립대학 음악 교수로서 본도의 음악교육 특히 취주악吹奏樂 발전에 대단한 관심을 쏟았다.

또 제주경찰 악대와 한국보육원保育院 악대의 육성에도 도움을 주었다. 더욱 특기할 일은 19519월 오현고등학교 취주악 지도에 임하면서 처음으로 18인조브라스 밴드부를 창설, 미국 출판사를 통해 취주악 악보樂譜를 구입해 기증했는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지원이며 또 최신형 악기를 도내 몇 개 학교와 경찰 및 보육원 등에 기증한 바 있다.

그는 오현고에 시멘트 200포 등 건축자재를 희사해 음악관音樂館을 오현단에 신축, 이는 길버트음악관이라고 명명命名되었다.

19521216일 최승만崔承萬 도지사에 의해 동광양에 도청 청사를 신축, 준공식竣工式이 개최되는 자리에서 음악 연주회가 열렸다.

당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 부부, UN군 사령관 벤프리트장군 부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길버트는 제주시내 연합고교 밴드를 지도, 헨델 작품 할레루야합창을 총지휘해 만장의 갈채를 받았다.

이러한 배경으로 195311월 경남 진주晋州에서 개최된 개천예술제開天藝術祭에 오현고 악대를 출전시켜 최고상을 수상, 제주의 취주악 수준을 전국에 과시했다.

이후 19589월 오현고 개교 7주년에 즈음해 오현단에 제진양주濟晋兩州 예연藝緣기념비를 전국문총全國文總 제주시지부에 의해 세워졌다. 비문은 시인 설창수薛昌洙(진주)가 지었으며 그 글에 민주 건국 첫 돌맞이 영남예술제가 그 네 번째로 오현 건아 50명의 취주악대 등이 동향동지와 함께 이미 다섯 해에 이른다.

푸른 바다 아득한 풍랑을 넘어 탐라의 예술혼이 오현 정신을 거쳐 길이 빛나고 꽃피리라.”했다.

이후 1960년대까지 해마다 최고상이란 영예를 획득했다. 이러한 공은 고봉식高奉湜·김승택金升澤 두 음악교사의 지도도 컸지만 그 기반을 조성한 길버트의 노력도 컸다.

길버트는 미국 하와이주로 이동, 어느 섬에서 음악 교육 지도에 힘을 쏟았다고 전해진다.

길버트 소령 찾기에 나서다=2012년 제주의 관악인들이 길버트 소령 찾기에 나섰다. 당시 관악제의 주제도 전쟁 속에 피어난 평화의 성율이었다.

제주국제관악제조직위원회는 2014410일 길버트(Charles E. Gibert) 소령이 미국 콜로라도에서 1998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과 함께 그의 딸과 연락이 닿았다고 밝혔다. 2

014년 제주국제관악제 행사에서 그의 딸 다이언 아놀드’(Diane Anold) 여사를 초청해 관악으로 맺어진 아버지와 제주의 인연을 기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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