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과 결
올과 결
  • 제주신보
  • 승인 2018.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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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허자, 광주대각사 주지·제주퇴허자명상원장

세상에는 두 종류의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올이 곧은 사람과 결이 고운 사람이 그것이다. 우선 올이 곧은 사람은 성격이 대쪽 같아서 불의와 쉽게 타협하지 않는 정직한 사람이며 결이 고운 사람은 성격이 유연해서 마음 씀이 따뜻하고 친교가 좋은 유순한 사람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성격이 융합한다면 얼마나 원만하고 좋으랴만 세상은 참 묘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아니면 ‘도’이다. 특히 부부의 천생 인연을 연구해보니 부부의 만남일수록 극과 극의 만남이 대부분이다. 나는 이를 ‘열쇠와 자물쇠의 관계’ 곧 부부의 천생연분으로 파악하고 있다. 열쇠와 열쇠, 자물쇠와 자물쇠의 만남은 친구는 될 수 있지만 부부는 될 수가 없다. 참으로 ‘다름의 미학’이다. 부부의 만남처럼 신비로운 인연도 없을 것 같다. 구백 구십 구생을 만나더라도 혈연지간은 될지언정 부부가 될 수는 없다. 일천 번째 비로소 부부로 만난다고 하여 천생연분이라고 한다.(하늘나라 인연설도 있지만.)

그러나 가끔은 전생의 원수가 부부로 환생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들은 살면서 엄청나게 다투거나 결국은 상대에게 큰 피해를 주고 급기야 헤어지고야마는 원진관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두 사람의 끈기와 인내로 잘 참고 견디어내면 전생의 못 다한 악연을 이생에 와서 해결함으로써 남은 생과 다음 생까지도 행복한 관계가 될 수 있어 무던히 참고 볼 일이다. 오늘 여기서 얘기되고 있는 올과 결도 마치 ‘부부연’과 같아서 올은 수직적으로, 결은 수평적인 서로 ‘짜임’의 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때 만약 올이 끊어지면 결도 따라서 풀어지게 되는 법, 이것을 우리는 ‘천이 낡아서 헤어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느 사회심리학자가 성공적 인생을 산 사람들을 분석해보니 그들에게는 서로 닮은 공통점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대인관계’였는데 한결같이 모두 우수하게 나타났다는 것, 그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대인관계를 가장 중요시했다는 것이다. 대인관계 역시 올과 결의 관계이다. 서로 밀고 당겨주면서 상호 협력하는 인간관계야말로 올과 결의 짜임새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계도 크게 각성해야 한다. 여야 간의 당리당략 투쟁으로 민생을 외면한다면 정치의 본래목적에서 멀어질 뿐이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본다면 더불어민주당은 ‘평화’를 주장하고 자유한국당은 ‘경제’를 주장하고 있다. 물론 양쪽의 얘기를 들어보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경제가 중요해도 남북 간의 긴장이 사라지지 않고 전쟁무드로 나간다면 경제 부흥이 무슨 소용일 것이며 또 반면에 남북평화통일이 이뤄진다 해도 국민이 등 따습고 배부르지 않다면 평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 이런 때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좀 더 여야 간의 협상테이블을 당겨서 ‘경제적 평화’와 ‘평화적 경제’를 논의할 수는 없는가? 곧 양자의 주장을 융합해 보자는 것이다.

왜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가리켜 ‘사회적 동물’이라 하였으며 파스칼은 ‘생각하는 갈대’라 하고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 한다’를 내세웠을까? 모두가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나 생각해보고 양보하면서 올과 결처럼 하나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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