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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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MD헬스케어 상임고문/논설위원

내년도 예산안 심의가 한참인 듯, 제주신보를 비롯한 제주지역 언론 기사는 일제히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나오는 주요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제주’를 도정의 비전으로 삼은 제주도가 낸 내년도 예산안은 총 5조3524억원이다. 얼핏 보기에도 경제 규모가 커진 것에 걸맞게 제주도의 예산은 지난 수년간 크게 늘었다. 이는 지역 총생산(GRDP) 대비 30%가 넘는 올해 국회에 제출한 정부 예산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높다. 바꿔 말하면 제주지역은 타 시·도에 비해 지역 경제에서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어떻게 예산을 집행하느냐에 따라 경제 활성화와 주민의 삶의 질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 언론이 예산안 심의 과정을 상세히 보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산의 배분이란 결국 어느 한 쪽이 늘어나면 다른 쪽의 예산 규모나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이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단기적인 현안 해결에만 예산을 집중하는 과정에서 착각에 빠지거나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깨진 유리창의 오류’에 관한 이야기는 이런 의미에서 음미해볼 만하다. 내용은 이렇다. 어떤 10대 아이들이 벽돌을 던져 빵집 유리를 깨고 도망쳤다. 사람들이 깨진 유리창 앞에 모여 그 아이들을 탓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그렇게만 볼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보라고 하면서, 빵집 주인은 이제 새 유리를 주문해서 끼워야 할 테니 이는 유리창 수리업자에게 소득이 될 것이고, 유리창 수리업자는 이렇게 번 돈을 다시 다른 사업자의 소득을 올리는 데 쓸 테니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소득과 지출의 연쇄효과는 소득과 일자리를 몇 배로 늘릴 테고, 깨진 유리창이 아주 많다면 이는 경제 활성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책이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할 때 빠지기 쉬운 오류인데, 실제로는 이렇다. 빵집 주인이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는 데 돈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면 그는 그 돈으로 양복을 사 입었을 것이고, 양복점 주인은 그렇게 늘어난 수입을 또 다른 사업자의 소득을 올리는 데 사용했을 테니 깨진 유리창은 새로운 소득과 일자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지출의 방향을 바꾸었을 뿐이다. 깨진 유리창은 ‘새로운 일거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다른 일거리’를 만들었을 뿐이다.

제주도는 내년까지 공무원, 공공기관, 공공사회 서비스 등에서 3000여 명의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고 했다, 예산 지원으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서 청년들이 선호하는 좋은 일자리가 생겨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예산으로 지역 경제의 경쟁력 강화 등에 투자된다면 장기적으로 더 좋은 일자리가 생겨날 수도 있다. 즉, 일자리가 창출된 것이 아니라 대체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공공기관도 효율성과 부가가치를 고려한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도의회는 예산안을 심의하면서 “제주의 성장을 위해 희생되거나 관심 밖에 밀려 있던 부분에 대한 정의 실현…”이라고 했는데 예산이 적절하게 집행되지 않고, 소위 목소리 큰 사람들이나 자기편인 사람들 위주로 복지 예산이 집행된다면 근면하고 묵묵히 살아온 선량한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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