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이라도 쳤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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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종 서귀포지사장 겸 논설위원

‘어부사(漁夫辭)’로 유명한 중국 초(楚)나라의 재상 ‘굴원(屈原)’이 주위의 시기와 모함으로 유배 생활을 할 때다. 그는 태복(太卜) 정첨윤을 찾아가 자신이 정성을 다하고 충직하게 살아야 할 것인지, 아첨하며 약삭빠르게 살아야 하는지 점을 쳐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정첨윤은 “무릇 척(尺)도 짧을 때가 있고, 촌(寸)도 길 때가 있으며, 만물에도 부족할 때가 있고, 지혜도 밝지 못할 때가 있으며, 점괘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고, 신령함도 통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며 “점을 쳐서 알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이 척유소단 촌유소장(尺有所短 寸有所長)의 고사성어는 초사(楚辭) 복거(卜居)편에 나온다.

1척(자) 30.3㎝, 1촌(치)은 3.03㎝에 불과하지만 상황에 따라 오히려 1척이 짧을 수도 있고 1촌이 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떤 일이나 경우에 따라 지혜로운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보다 쓸모가 없고, 어리석은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보다 나을 때가 있다는 비유로 쓰이기도 한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장단점이 있으며 일의 종류나 상황에 따라 그 가치가 다를 수 있다는 의미다.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그동안 숱한 논란을 야기했던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외국인만 진료 대상으로 한다’는 조건부로 5일 허가했다. 원 지사는 제주의 미래를 위해 고심 끝에 내린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했다.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도민사회의 여론은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서귀포시 동홍·토평동 주민들은 행정의 신뢰성, 대외 신인도, 지역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 등의 측면에서는 병원 허가를 주장한 반면 의료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의료 공공성 훼손 등을 이유로 강력 반대해 왔다. 정책 자문 방향도 엇갈렸다. 道보건의료정책심의위는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아 건물을 신축했고 직원들도 채용된 상황 등을 감안해 외국인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한 조건부 허가를 권고했지만 숙의형 공론조사위는 지난 10월 4일 불허 결정을 주문했다.

▲아무튼 원 지사의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결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아쉬움은 조건부 허가를 내줄 것이면서 굳이 숙의형 공론조사위까지 가동했느냐 하는 점이다. 공론조사위가 허가 결정을 내려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일까.

굴원의 고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점이라도 쳤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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