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앞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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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4·27판문점선언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상상 하지 못하던 놀라운 행보였다.

그때, 50m 안팎의 작은 도보다리를 거닐던 남북 정상의 산책 모습은 꿈속의 그림 같았다. 친교를 위한 그 만남의 장면에 우리, 얼마나 열광하고 환호했나. 두 정상은 걸으며 끊임없이 담소했다. 그리고 다리 끝에 놓인 의자에 마주 보며 앉아 이어 간 30여 분의 밀착대화. 그 자리엔 옛 전쟁의 상처도, 무슨 이념 따위도 없었다. 그게 화제로 떠오르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됐다.

눈을 닦고 봐도 틀림없는 눈앞의 사실임에 다들 감격했다. 평화 통일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라고 한반도가 들썩였다. 그토록 갈망해 온 소원의 성취가 바로 목전에 와 있다는 환상에 분명 대다수 국민들이 전율했으리라.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싼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이어지며 다시 현실의 극명한 한계에 부딪힌다. 지금 우린, 허탈하다.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는 관계의 미묘한 정황들이 더 이상 걸음을 내딛지 못하게 한다. 넘어야 할 산이 아직 첩첩하다는 인식이 우리를 옥죄면서 몹시 우울하게 하고 있다. 우리 마음대로만 되는 일이 아닌 만큼 앞을 내다보는 거시적 예단에 온 지혜를 모아야만 한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할 일, 또 그래야 할 때다.

일단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환상은 현실을 어지럽혀 왜곡시킬 수도 있다. 남북 관계가 어디 예사롭고 여차한 일인가.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지나온 흐름을 들여다보는 것은, 단적으로 얘기해 미래로 나아가는 방향타가 될 것이 틀림없다. 정시(正視)의 시선을 잠시도 거둬선 안된다. 남북관계가 상당히 고무돼 있는 오늘의 이 좋은 분위기를 놓쳐서도 안되거니와 허투루 할 일이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다.

한데 우린 아무래도 조급해 보인다. 또 우리가 맞닥뜨린 일련의 상황에 대해 너무 안이한 것 같다. 얼마 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이런 외침이 울려 퍼졌다지 않은가. “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님의 열렬한 팬입니다. 팬클럽회원을 공개 모집합니다. 나는 공산당이 좋아요.”

평양이라면 모를까, 대한민국 서울의 한복판에서 그것도 한낮에 벌어진 일이다. 하도 끔찍해 할 말을 잃는다. 반국가단체의 수장을 칭송하는 행위는 명확한 실정법(국가보안법) 위반이다. ‘백주대낮 서울 중심에서 저 짓거리를 하는데, 경찰은 뭐하느냐’고 항의하는 사람인들 왜 없었을까. 법을 위반하고 있는데 역할을 하지 않는 건 분명 직무유기다. 실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못지않게 낯 뜨거운 일이 있었다. EBS미디어가 김정은 위원장은 ‘세계 최연소 국가원수’라고 적힌 종이인형을 판매해 미화 논란에 불을 붙였다. “종이 교구를 통해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이해시키려 했다.”는 합리화는 상식 이하다. 실제 그런 분탕을 해도 되는 인물인가. 미화가 도를 넘으면 과장이 된다. 그 이전에 그는 우리에게 어떤 인물인가.

엊그제의 일. 경기도 한 고등학교 교실 앞에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걸려 있는 풍경은 우리를 경악케 했다. 한 달째란다. 어째서 이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지 가슴 쓸어내린다.

너무 앞서가고 있다. 이 같은 편향적 행보가 남남 갈등의 불씨가 되지 말아야 할 텐데, 실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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