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가을, 안덕면 상창리에 있은 카멜리아 힐에서 ‘현곡 양중해기념관’ 개관식이 있었다. 평소 인연을 맺어왔던 분들이 모여들었다.
맑은 하늘아래 빨갛게 핀 동백꽃들도 활짝 웃으며 반기는 듯 했다. 이때 축하곡으로 한 테너 성악가가 ‘떠나가는 배’를 불렀는데 내 마음의 강물을 잔잔하게 흔들어놓았다.
-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임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양중해 선생은 나의 고등학교 은사로서 돌아 가신지가 십수년이 되었다. 6.25사변 직후 제주도는 밀려드는 피난민으로 가득 찼고 그들 중에는 인재들이 상당수 섞여있었다. 이중섭 화가도 그 중 한사람이다. 산지부두(제주항)는 오가는 인파로 늘 들끓었다. 당시 교편을 잡고 있던 선생은 서울에서 내려와 있던 동료교사의 약혼녀가 돌아가게 되자 벗 삼아 부두로 나갔다가 이 이별의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를 시로 썼는데 그것이 ‘떠나가는 배’이다. 마침 제주에 피난 내려와서 영어를 가르치던 변훈 선생이 이 시에 곡을 붙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명태’ ‘님의 침묵’등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당시의 시대상황이나 제주도의 여건으로 보아 배를 타고 육지에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고향을 등지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과 두려움 때문에 서러움과 슬픔이 앞섰으리라.
시에는 님을 싣고 떠나가는 배를 원망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저 배에는 어떠한 사연들이 깃들어 있을까. 손수건을 내 저으며 흐느끼는 여인, 주름진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 배가 사라져도 자리를 뜨지 못하는 아낙네. 어쩌면 우리의 인생 자체가 만났다가 떠나는 것이기에 삶의 온갖 사연이 다 들어있으리라.
겨울바람이 싸늘하게 부는 어느 날 오후, 탑동 바닷가를 향했다. 수평선 너머에는 배 한척이 멀어져가고 있었다. 선생의 ‘떠나가는 배’ 시비 앞에 섰다. 선생님의 생전에 인자한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계속하여 거닐다보니 어느덧 서부두 방파제 위에 와 있었다. 학창시절에 이곳을 거닐면서 저 멀리 떠나가는 배를 보고 나도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곤 했었다. 제주를 떠나는 배들은 미지의 세계를 품은 내 꿈을 싣고 멀리 사라지곤 했다.
떠나가는 것이 어디 배 뿐이겠는가. 사랑하는 가족도, 없으면 못살 것 같던 연인도, 다정한 친구도 언젠가는 떠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떠나야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떠남은 애달프기만은 한 것이 아니리라.
얼마 전 내 형님과 처남이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애절함에 인생의 무상함을 막을 길이 없었다. 나도 이제 일흔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내가 건재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또한 내 생애의 마지막 순간이 은연 중 다가오기에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
그 순간을 향하여 내가 믿는 창조주를 경외하며 여태까지 내 자신만을 위하여 짊어진 무거운 짐을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나를 싣고 떠나갈 배가 내 영혼이 안식할 본향으로 데려다 주기를 소망(素望)하며 선생의 시비 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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