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미래직업, ‘인생의 마무리를 우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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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초빙교수/논설위원

토요일 아침 10시. 동심 할머니의 얼굴에 전에 없던 분홍빛 미소가 어렸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덥석 잡고 보니, 세상에, 열 손가락 손톱마다 봉숭아꽃이 물들었다. ‘삼춘, 새각시보다 더 곱수다 예!’라며 탄성을 지르는 내게, 할머니는 두 손을 감추시며 발갛게 웃으신다. 봉숭아보다 더 환한 할머니의 웃음이 요양원 환우들에게 소망을 더해준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 날아든 동심 할머니의 부음은 기약 없는 노인의 삶 앞에서 그저 머리를 숙이게 한다. ‘87세에도 17세처럼 미소가 고우셨다’는 우리의 소도리에, ‘진짜 그렇게 웃으셨냐’고 되묻는 막내딸은, ‘어느 고마운 분이 우리 어머니의 마지막을 그다지도 곱게 물들여 주셨냐’며 눈물을 닦는다.

이처럼 ‘인생의 마무리를 우아하게’라는 모토로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방법과 관련된 산업이,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 직업으로 손꼽힌다. 이른바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가 제롬 글렌 밀레니엄 프로젝트 회장과 공저한 ‘일자리 혁명 2030’에서 얘기하는 라이프 엔딩 산업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고령화와 인간관계의 단절로 혼자 사는 노인들의 고독사가 증가하면서 생의 마지막을 부양할 필요성과 사회적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가족 사랑과 인생 마무리를 환기시키는 일이 주목을 받고, 관련 일자리의 창출이 기대된다.

이는 마치 토요일 아침 11시가 되면 창문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경추 할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일이다. ‘가령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라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연상케 하는 할머니는, 멀리서도 우리의 발자국 소리를 알아챈다. 가는귀가 먹은 할머니가 보여주는 이러한 신기(神技)는 갓 쪄낸 고구마가 소반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방안에서 ‘오, 기적’이 된다. 내년에 백세가 되실 할머니가 이토록 정정하게 혼자 사는 모습이, 육지 출신 권사님의 눈에는 불가사의다. 그러나 할머니가 4·3사건으로 먼저 가버린 남편과 물질로 두 아들을 키워낸 세월 때문에, ‘생각허민 칭원허고 칭원허주만은(가슴아프지만) 지내븐 일이난 잊엉 살아점수다’라며 눈물을 훔치면, ‘삼춘이난 살아수게’라며 함께 훌쩍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함이 드러난다.

어떻게 하면 제주사회의 노인 문제를 인간미 있게 풀어갈 수 있을까? 실은 올여름 동안 서귀포시 노인회의 제안으로 약 서른 군데 경로당을 방문하였다. ‘노인이 되지 말고, 존경받는 어른이 되자’는 특강이 목적이었다. 지난 8월, 인천공항에서 발생한 ‘노인들의 피서를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 때문에, ‘늙어서 미안하다. 너희들은 절대 늙지 마라. 나도 내가 이렇게 늙을 줄 몰랐다’는 어느 어르신의 댓글이 계기가 되었다. 강의를 하는 동안 ‘어떻게 하면 자식이나 사회에 짐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어르신들의 진지한 눈빛이, 정녕 슬프고도 미안하였다. 이분들이 어떻게 제주사회를 지켜왔던가.

제레미 리프킨은 3차 산업혁명으로 야기된 ‘노동의 종말’에서 실업과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간다움의 회복에 기반한 자원봉사형 사회서비스의 직업화’를 제안하고 있다. 이는 원희룡지사가 공약한 ‘사회적경제 신규 일자리 3000개 창출’과 일맥상통한다. 요컨대 동심 할머니의 손톱에 봉숭아 꽃물들이기와 경추할머니의 인생사 원 없이 들어주기가 제주에서는 일자리가 되는 거다. 이렇게 서로가 길들여지면서 네 시가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어린왕자처럼 행복한 제주사회를 꿈꾸어 본다. 인생의 한 해가 또 저물어 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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