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를 가다 ⑵
남도를 가다 ⑵
  • 제주신보
  • 승인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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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섭, 시인·수필가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국 뻐국 뻐국새 숲에서 울재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시고 오신다더니….’

‘오빠생각’이란 동요다. 어린 시절에 동네에서 초등학교 학생들이 부르던 동요다. 필자는 학교 마당 밟아보지 못해 따라만 부르다가 오늘 버스타고 남도의 어느 시골, 마을길을 지나면서 회원들이 부르는 모습을 보니 어린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 눈시울이 뜨겁다. 보통 사람들은 여행길 버스 안에서 박수를 치며 대장박소, 흥겨운 유행가를 부르건만 여행인 만큼 기독교의 사역자들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어우러져 의미가 새롭다. 그래서 동심의 세계는 모든 어른들의 마음의 고향이라 하지 않았던가.

완도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날이 새고 묵었던 숙소 바로 앞에 완도의 명승지 명사십리(明沙十里)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겹쳤던 피로가 풀리고 새파란 하늘을 향해 몸과 마음 그리고 두 팔을 드높이 들어올렸다. 희망의 샘이 솟듯 회원들의 용기를 복돋아주기 위함이었다.

이어 남도의 유서 깊은 마을이며 명승지를 찾아 나선다. 여행은 즐기려고 떠나는 것이 아니다. 보고 듣고 읽고 현장 그곳에 머무르는 상상의 체험이다. 또한 유서 깊은 명승지를 돌아보면서 역사의 패러다임 문화의 향유(鄕儒)다.

전남 완도군 해상왕 장보고기념관을 찾았다. 장보고는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중반을 살았던 인물로 완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당(唐)나라 강소성(江蘇省) 서주(徐州)에서 무령군중소장(武寧軍中小將)으로 활약하다 귀국해 완도에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하는 등 동북아 해상 무역을 장악했던 인물이다.

장보고는 어린 시절, 청해(현재 완도군)에서 780년 대에 태어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등에 실린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기록은 한결같이 그의 훌륭한 인품과 업적 등에서 좋은 평을 남기고 있다. 현재 황해와 남해의 바닷길을 통해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동아시아 해양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했을 뿐만 아니라 해양 실크로드를 통해 동남아, 인도, 페르시아, 교역을 주도하고 있다.

‘장보고 청해진 대사’는 우리나라 문명 교류사회에서도 획기적인 족적을 남겼다. 중국이 독점하던 청자 생산기술을 이전해 해남과 강진 일대에 대규모 생산단지를 건설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세계 두 번째 청자 생산국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차 문화 확산에도 지대한 공헌을 남겼다.

‘청자-신종-차’로 이어지는 당대 최고의 문명 3종 세트를 유입해 안착시킴으로써 우리나라를 문명국의 열반에 올려놓았다.

2박 3일 진행되는 문화 탐방 남도의 여행길에서 배움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국제장애인문화교류협회’는 부단한 노력으로 첫날 광주 망월동 5·18 국립묘지를 시작으로 남도의 끝, 땅 끝 마을까지 이르는 교육의 현장을 둘러볼 수 있어 필자는 누구보다 감회가 남다르고 눈물겨웠다. 교육의 전당인 학교에서 전인적인 교육을 받아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문화 탐방을 마치고 회원들과 헤어질 즈음 ‘고향의 봄’을 부르는 가슴엔 새파란 유월의 하늘만 드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