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과 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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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미연방수사국(FBI)의 심리 기반 수사 기법을 국내에 최초로 도입한 검찰 수사관의 인터뷰를 통해 들은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권력층 사칭 사기 사건은 특히 장년층에게 잘 먹힌다는 것이다. 정권의 비자금과 연관하면 대개가 넘어간다. 내용은 이렇다. 전직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이라 하면서 해외에 분산 예치된 거액의 비자금을 국내로 들여와야 하니 도와달라는 식이다. 서울 명동 사채시장과 종로, 강남, 여의도 등에서 이런 유형의 사기는 예나 지금이나 통한다고 했다.

이를 놓고 보면 수법이 고전적이라고 해서 유효기한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보이스피싱이 좋은 예다. 피해 사례가 언론에 오르내리고,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일단 의심하라’며 대국민 교육을 통해 강조하고 있지만 도로 아미타불이다.

▲권력층 사칭하면 누구나 ‘가짜 이강석’을 떠올린다. 1957년 대구 출신의 청년(당시 22세)이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 이강석 행세를 하며 사흘 동안 경북 도내를 휘젓고 다녔다. 태풍이 지난 후라 “아버지의 비밀 분부로 풍수해 상황을 시찰하러 왔다”라고 하자 기관장들은 “귀하신 몸이 어찌 혼자 오셨습니까”라며 황송해했다. 청년은 말씨도 서울말 비슷하게 바꿨다. 가는 곳마다 극진한 대접을 받고 수재의연금과 여비 명목으로 돈도 두둑이 챙겼다. 막판 경북도지사 관사에 갔다가 진짜 이강석의 얼굴을 알고 있는 지사에게 덜미가 잡혔다. 그는 법정에서 권력의 힘이 위대한 것을 느꼈다고 진술해 또 한 번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가짜 이강석 사건의 재판(再版)이다. 윤장현 전 광주광역시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가 현직에 있던 작년 12월부터 올 1월까지 자신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라고 사칭한 40대에게 4억5000만원을 뜯겼다. 그는 사기범에게 속은 피해자지만 6·13지방선거 공천을 앞두고 거액을 주고 채용 청탁까지 들어준 정황 등이 드러나면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돼 어제 검찰에 출석했다. 보이스피싱 사건인 줄 알았던 것이 점입가경이다. 어쨌든 사기 사건을 거론할 때마다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권력층 사칭 피해자로선 최고위층이다. 그래서인가 지역 민심도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며 분노하고 있다.

▲사기는 테크닉이 아니고 심리전이라고 한다.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뭘 두려워하는지를 알면 속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사기꾼에게 호구가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만족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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