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분열의 씨앗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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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평화와 통일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한국인들이라면 굳이 경험해보지 않아도 긴장과 분열의 고통쯤은 다 안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경험한 게 불과 70여 년 전 일이고 그 이후에도 팽팽한 대결과 긴장국면은 계속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할 때마다 가장 중요하게 꺼내는 화두 중 하나가 한반도 평화다. 비핵화와 대북제재, 긴장완화, 경제협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서울답방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한국의 대통령이 외국의 지도자들을 만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건 중요하다. 외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의 이해와 지지를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문 대통령이 최근 체코와 아르헨티나를 방문하고 귀국길에 뉴질랜드에 들렀을 때도 그런 노력은 돋보였다.

뉴질랜드 동포들은 문 대통령 말대로 대부분 쌍수를 들어 한반도 평화 방안에 환영과 지지를 표시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시각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나온다. 뉴질랜드에서는 일부 교민들이 문 대통령 방문 기간 중에 김정은 위원장 답방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게 일회성 해프닝만은 아닐 것이다. 더 큰 분열이 생길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실제로 그런 낌새가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부딪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한인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소모적인 정치 논쟁으로 다른 사람들과 싸우기 싫다는 뜻이다.

평화와 통일 문제 때문에 분열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건 역설적이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방법론과 북한과 김정은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이하기 때문이다. 벽이 너무 높아 대화가 안 될 정도다.

어떤 나라, 어떤 시대에도 사회 현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대개 토론을 통해 그런 차이를 극복한다. 원만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동원해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다양성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이유다.

만일 그렇지 않고 상대방의 입을 막으려 들거나 비난만 한다면 토론은 싸움이 되고 만다. 한국의 정치권이 유독 그런 경향이 심한 편이다. 걸핏하면 등장하는 정치공세라는 말이 그걸 보여준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를 가장한 선전전이나 집회와 시위가 일상적인 정치수단이 될 수도 있다.

토론이나 논쟁에서 중요한 건 상대방을 KO시키는 게 아니다.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떤 목표를 향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말부터 품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장이 논리적이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이 아니라 내용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종북세력, 보수청산, 버르장머리, 귀싸대기, 머리의 피도 안 마른 놈, 공갈친다는 식의 벌거벗은 적대적 언어로는 어림도 없다. 선명성과 투쟁성으로 점수를 따는 정치 풍토는 안 된다. 갈등과 분열을 확대 재생산하는 더러운 옷은 벗어던져야 한다.

한반도 평화 노력이 새로운 갈등과 분열의 씨앗이 된다면 모두가 불행한 일이다. 정치인들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분열하지 않으면 동포 사회는 절대 분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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