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이 없는 백비(白碑)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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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휘, 전 제주도농업기술원장

육지에 나가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에 있는 아곡 박수량(朴守良·1491~1554년) 선생의 묘, 비문이 없는 하얀 비석(백비)을 볼 기회가 있었다. 선생의 16대손인 박태호(69세)에게 아곡 박수량의 생애와 공직관을 들을 수 있었다.

백비가 세워진 것은 아곡 선생의 청렴함을 높이 산 조선 명종(明宗)의 왕명 때문이다. 1514년에 별시 문과에 급제해 부정자(副正字)를 거쳐 예조조랑, 충청도도사를 지내고 1522년 사헌부 지평(持平)이 되었다. 1536년 예조참판을 거쳐 전위사(餞慰使)가 되어 명나라 사신을 맞이했다.

1546년에 춘추관 동지사(同知事)로서 중종실록, 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이듬해 한성부 판윤(判尹), 중추부지사(知事)에 이르렀으며 청백리에 녹선됐다.

아곡은 38년간 공직 생활을 하면서 비가 새는 낡은 집에서 기거할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 63세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는 묘를 크게 쓰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유언했다.

명종은 운상비가 없이 고향으로 가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장례비를 마련해 주고 서해안 하얀 화강암을 골라 비를 하사하면서 비석에 글을 새긴다면 그 이름에 누가 될지 모르니 글자 없이 세우라 명하여 지금의 백비가 됐다.

마침 중앙공무원 교육원이 5급 승진자 과정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청렴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백비를 보았다. 공직자 모두에게 청백리를 강조할 생각은 없으나 이와 같은 청백리도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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