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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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동화작가

햇볕이 따사로운 어느 봄날로 기억된다. 정년퇴직을 하고 오랜 만에 해안도로를 따라 올레 길을 걷다가 만난 카페에서의 추억. 상호(商號)가 맘에 끌렸음이련가? 우린 잠시 쉬어갈 겸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었다. 카페 지금 이 순간에서 좋은 친구들과 수평선 너머로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어선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부드러운 바람 앞에서 우린 너나할 것 없이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했었다. 그렇다. 우리는 그 순간에 그 카페에서 그렇게 하나가 됐었는지도 모른다.

잊지 못할 한담해변 올레 길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톨스토이의 인생론이 떠오르는 건 또 어인 일일까?

인생론은 러시아의 대문호 레흐 톨스토이의 참회록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가 등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묵시적(黙示的)으로 담겨있어 한 해가 가는 세모(歲暮) 무렵에 읽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다. 삶의 근본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인생론을 읽고 삶의 텃밭을 더 풍요롭게 가꿔보는 건 어떨까?

톨스토이의 인생론에서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을 암시하는 좋은 일화가 있다.

두 친구가 눈보라 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눈보라 속에서 두 친구는 눈 속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이보게 우리 이 사람을 같이 데리고 가세. 아니 지금 무슨 소린가? 이 눈보라 속에서 같이 얼어 죽을 텐가? 난 그냥 가겠네. 하지만 친구는 쓰러진 사람을 등에 업고 끊임없는 눈보라 속을 걸어갔다. 끝없이 펼쳐진 벌판에서 추위와 싸우며 걸어가던 친구는 이윽고 도착한 집 앞에 먼저 간 친구가 얼어 죽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찾아보라는 묵시적 일화이지만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사람이 지배하고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존재는 자신이 지금 대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지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그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여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렇다. 지금 이 시간 지금 만나는 사람 지금 하는 일이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을 우리는 왜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먼 미래에서만 행복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다가오지 않는 신기루일 뿐이다. 행복은 오늘 소소한 일상을 해나가는 지금 이 순간에 있다.

칼바람이 온 뜨락에 가득하다. 겨울이 깊숙이 우리 곁에 들어와 있음을 체감한다. 동지(冬至)가 코앞이고 보면 이제 다시 한 해가 가는 막다른 길목에 서있다. 이 막다른 골목에 서있는 지금 난 무엇을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을까? 만약 그 삶이 잡히지 않는 신기루라면 우리 모두 지금 이 순간 내 자신을 숙연히 돌아볼 일이다. 저무는 길목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과 이웃들을 돌아보며 다시는 오지 않을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온 몸으로 맞이하는 건 어떨까?

그 봄날 그 순간의 행복을 느끼게 해준 한담해변 올레 길이 다시 그리워진다. 깊어가는 겨울 속에 한담 해변은 어떤 모습으로 우릴 맞이할지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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