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저축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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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주, 수필가

커다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걷는 이들이 있다. 무거운 돌을 등에 지고 걷는 이들도 있다. 얼굴은 까맣게 그을린 채, 표고 1000m가 넘는 비탈진 산 중턱에서 도로확장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움직임으로 보아 일의 진척은 느려 보였고, 도로는 언제쯤이나 완성될지 막막했다. 포클레인이나 지게차가 할 일을 사람이 대신했다. ‘롱지(Longyi)’라는 긴 치마를 입고 있는 젊은 여성을 보니 삶의 배경이 짐작된다.

양곤에서 ‘바간’으로 넘어가는 산의 허리를 지날 때쯤의 도로공사 현장이다. 바람이 불면 금세 날아갈 것같이 아슬아슬한데 안전장비도 없이 그것도 슬리퍼를 신고 있던 그들. 위험해 보였다.

얼마 전, 미얀마에 다녀왔다. 그곳에는 도처에 황금 탑이 즐비하다. 햇빛에 반사된 탑들은 찬연히 빛나고 있었다. 탑 앞에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합장하는 사람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그 대가로 받은 돈을 불전에 보시하는 걸 가장 큰 의미로 생각한단다. 그러기 위해 일을 한다고 할 만큼 보시에 대한 실천 의지가 강했다.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삶이 어려워도 보시가 먼저라는 생각. 그럼 노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병들고 아프면 무료로 치료 받을 곳은 있으며. 하지만 그런 사회안전망이 잘돼 있는 것도 아니라 한다. 치료비가 비싸 병원에 못 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래도 계속 보시하는 이유가 뭘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보시는 이미 생활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 문화였다.

아끼는 걸 기꺼이 내놓으며 다른 희망을 갖는 그들, 내세의 삶이 지금보다 행복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거나 재산을 축적하려는 시대에, 그들은 신앙으로 행복을 저축했다. 오늘도 수백, 수천의 탑 앞에 촛불을 밝히고, 꽃을 들고, 줄 지어 있을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미얀마 인들의 행복은 그런 것이었다.

우리의 행복은 어떤 것인가. 요즘 정부의 가파른 경제정책으로 많은 서민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경제신문 헤드라인에 나온 ‘감소했던 법인 회생 다시 증가’, ‘개인 회생 신청 몇 프로 더 증가’, ‘빛에 시달리는 청춘들’, ‘결혼 안 한 게 그나마 다행이네요.’ 라는 문구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수십 년을 운영하던 업체들이 무너지고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은 취직이 어려워 알바해 번 돈으로 학자금 대출에 생활비도 모자라 빚더미다. 이어지는 사회 문제는 또 어떤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은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다. 행복을 물질로 채울 수 없다고들 하지만, 그건 삶에서 최저의 조건이 충족됐을 때 할 수 있는 말일 뿐이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 한다. 당장 힘들고 어려워도 마음의 속도를 조절하여 조금만 힘내 보자. 지금의 부족함이 언젠간 채워지고, 채워진 것들은 언젠가 흘러간다. 사랑은 미움에서 나오고, 행복은 부족함에서 온다. 무엇이든 혼자선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하거나 넘치거나 변한다는 진리를 새긴다면 지혜로운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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