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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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스즈키컵에 우승하자 베트남이 확 뒤집혔다. 열풍에 휩싸여 전역이 바글바글 들끓었다.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였다. 열망하던 승리를 거머쥔 그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나누는 모습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대~한민국’의 광풍을 재연하는 것 같았다. 경기가 끝나고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베트남이 삽시에 마비돼 버렸다. 10년 만에 숙원을 풀었지 않았나.

아마 100데시벨이 훨씬 넘었을 테다. 거리를 점령한 오토바이 부대가 시끄러운 경적을 울리며 시가지를 누볐고, 시민들은 금성홍기와 태극기 그리고 박항서 감독 얼굴을 새긴 대형 현수막을 뒤흔들며 나라 안 천지를 수놓았다. 붉은 물결로 너울 치는 바다였다. 그들은 걸음걸음 ‘박항세오!’를 연호했다.

마법이었다. 진즉, 넘실대는 격랑의 바다 한복판에 한국인 박항서 감독의 마법이 있었다. 말레이시아와의 결승전 원정 첫 경기를 2대2로 비겨 유리한 고지에 올려놓은 뒤, 최종 홈경기에서 1대0으로 승리를 결정짓는 휘슬이 울린 감격의 순간, 선수들이 달려들어 박 감독을 헹가래쳤다. 남의 나라 일 같지 않아 가슴 벌렁거렸다.

박 감독은 “정말 기쁘다. 나와 선수, 코치진들은 베트남 국민의 많은 사랑과 격려를 받았다. 우승의 영광을 베트남 국민에게 돌린다.” “베트남에서 선수들과 생활할 때가 가장 즐겁다…저를 사랑하는 만큼 내 조국 대한민국도 사랑해 달라”며 울먹였다. 그는 월남전 후의 떨떠름한 관계를 일시에 해소시킴으로써, 양국 간의 우호증진에 크게 이바지했다. 미친 존재감을 발휘한 것이다.

스즈키컵은 동남아시아의 월드컵으로 불린다. 챔피언의 자리가 빛나는 이유다. 화룡점정, 승리하면서 마지막 점을 찍자마자 용이 승천했다. 박항서 마법이 해낸 것이다. 베트남 축구의 신화를 그가 작성했다. 이제 그는 전설이 됐다.

스포츠는 승부의 냉혹한 세계다. 그냥 되는 일이 아니다. 개인도 그러한데 열한 명이 한 팀이 돼야 하는 축구는 더욱 그렇다. 개인이 잘한다고 되지 않는다. 발군의 기량이라 해도 전체에 녹아들어 원 팀에 기여하는 것이라야 한다. 그럴 때 선수 모두에게 주어지는 영예가 승리다. 어느 과정에서 박 감독이 경기에 패해 풀죽은 선수들에게 한 말이 육성으로 살아난다. “고개 숙이지 마라. 너희에겐 국민이 있다.” 자식 같은 선수들에게 한 그 말, 단지 건성으로 한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자존감을 일깨워 준 강한 메시지였다.

박항서 리더십은 빛났다. 이른바 ‘소통의 파파 리더십’, 선수들은 그를 ‘아버지 혹은 스승’이라 부르며 따랐다. 선수들과 함께 탑승한 비행기에서 자신의 비즈니스 석을 부상당한 선수에게 내줘 편히 쉬도록 했다는 인간적·탈권위적 배려, 선수에게 다가간 팔 걷어붙인 마사지. 귀국길 공항에서도 선수들을 앞세우고 맨 뒤에 서 있는 모습이 베트남 국민들에게 포착되면서 박항서 신드롬이 기지개를 켰다. 박 감독이 베트남에 ‘천국을 선물했다’ 할 정도다.

말레이시아도 쉬이 물러서지 않고 매서운 반격으로 맞섰다. 두어 번의 실점 위기도 있던, 일진일퇴의 격전이었다. 하지만 베트남 팀은 역습과 두터운 수비로 말레이시아의 화력을 무력화시켜 그 험산의 벽을 넘었다. 챔피언에 오른 베트남 국민들은 밤새워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박항서 마법이 한 나라를 환희 속으로 몰아넣다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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