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전야의 메시지-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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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우리 아들이 어려서 다섯 살 쯤일 때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 갈 일이 생겼다. 장에 탈이 생겼는지 토하고 설사하고, 증상이 아주 심각해 보였다. 그래서 서둘러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차를 몰았다.

응급조치를 하고 몇 가지 검사를 하고나서 기다리는 동안에 밤이 깊어갔다. 검사 결과를 보고나서 집에 돌아가려면 한참 더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엄마와 누나는 집에 가게 하고 어린 아들과 나만 병원에 남기로 했다.

응급실의 침대에 계속 누워있는 것을 싫어해서 아이를 일단 등에 업었다. 주로 아줌마들만 사용하는 크고 넓적한 띠로 아이를 등에 엎고서 늦은 밤의 텅빈 병원 복도를 서성거렸다. 오후 내내 아파했고 여러 가지 검사를 했으며,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았다. 그러다 지쳤는지 아이는 잠이 들었다.

등에 업힌 채 잠든 아이에게서 심한 냄새가 났다. 토한 냄새, 설사한 냄새, 주사 냄새, 약 냄새…. 다양하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아이를 등에 엎고 밤늦은 시간에 병원 복도를 왔다갔다하는 나 자신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아이가 크면 이 냄새나는 이야기를 전해주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새벽 시간이 다 되어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나는 가끔 그 밤을 기억해낸다. 그런데 나보다 키가 더 큰 아들은 냄새나던 그 밤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고 관심도 없는 듯하다.

이 세상 아버지들은 그런 냄새와 그런 밤을 통하여 아들을 생각하려 하는데, 이 세상 아들들은 언젠가 나를 심하게 야단쳤던 아버지만을 기억하려 한다. 그런 기억을 고집하며 살다가 자신도 아버지가 되어갈 때 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는 것이다.

냄새나던 그 밤을 기억하면서 아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해보고 싶은 것이 아버지들의 마음이다. 그런데 아들은 자신을 야단치던 아버지의 엄격했던 표정과 어린 나를 분노케 했던 그 감정과 판단을 앞세우려 한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논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실제로는 가장 먼 관계가 되고 만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진정한 대화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나서야 시작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주 옛날부터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어느 한 편이 죽고나서야, 이제는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나서야, 우리에게 대화가 필요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가정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치 사회 종교 사상의 제반 분야에서 그 악순환이 끊임없이 당당하게 흘러가는 것이 우리의 고달픈 역사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에게는 시시때때로 새로운 마음이, 새로운 판단과 해석이 주어져야 한다.

유대인들의 탈무드에 이런 질문이 나온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땅은 어떤 땅인지 아는가?” 그에 대한 답은 이런 것이다. “반성하는 자, 마음을 돌이키는 자가 서 있는 땅이 가장 고귀한 땅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 땅을 고귀한 땅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일일 것이다.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할 수 없는 이유만 찾으려 했던 그런 마음을 돌이키는, 반성하는 성탄절이 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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