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제주 산타는?-4·3 생존 수형인 재심재판을 보며
2018 제주 산타는?-4·3 생존 수형인 재심재판을 보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임애덕, 사회복지학박사·논설위원

제주 웃뜨르 산간마을 성탄절은 매우 이색적인 풍경이어서 어린아이들을 설레게 했다. 매일 새벽과 초저녁에 성당의 종소리는 말씀의 신비로움을 산골짜기마다 널리 퍼지게 하였다.

누가 그 성당의 종을 울렸을까? 조국 해방으로 꿈을 안고 일본에서 돌아와 결혼한 22세 삼춘은 4·3사건 후 소개령으로 해변으로 피난을 갔다. 그러나 남편이 00엉알에서 창에 찔려 죽고 유복자를 임신하고 귀향했다. 그 후 홀로 두 딸을 키우면서 365일 새벽과 저녁시간 성당의 종소리를 울렸다.

2018년 4·3 생존수형인 재심 공소기각이라는 뉴스을 접하고 성탄절이 다가오니 항상 치마저고리를 입고 두건을 쓰고 종벽에서 줄을 당기던 외로운 여인과 그 성당의 종소리가 더 그립다.

어린 시절에는 왜 그렇게 산간마을 우리 동네에 홀어머니들이 많이 살았는지 알 수 없었다. <제주여성사>를 편집하면서 김순이 선생님은 그런 분들 사진에 ‘홀어멍쇠테우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2018년 다양한 직능에서 터져 나오는 사회적 욕구들, 집회들 그리고 제주 4·3 생존 수형인 재심재판을 지켜보면서 70년 전 제주 산간마을을 상상해본다.

해방직후 일본군 징용과 공출 등으로 노동, 굶주림, 매질의 세월이 끝난 줄 알았는데, 새로운 희망의 시간은 잠깐이었고 2차 대전 이후 냉전으로 무정부 상태 그리고 매카시즘 광풍은 제주산간마을에도 몰아쳤다.

일제강점기 공출과 수탈로 극도의 빈곤과 굶주림, 콜레라 등 질병에 지친 산간의 순진무구한 농민들은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이 광풍을 맞이하였고, ‘우린 어드레 의지허영 살아날코’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졌다. 그래서 산간의 순진무구한 농민들은 생존하기 위해 마을의 힘 있는 자들이 막으라하면 막았고, 열어라 하면 열었고, 백기를 꽂으라 하면 백기를 꽂았다. 토벌대가 산간마을에 오면서 백기를 꽂은 사람들이 폭도에게 동조했다고 하여 다수가 처형되었다.

그 이후 연좌제로 제주인의 존엄과 자존감은 정치권력과 중앙언론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4·3을 체험하지 않는 2세대도 이유도 모른 채 침묵하라하니 쉬-쉬해야 했다. 대부분의 제주인이 70년간 진학, 취업, 여행 등을 위한 신원조회 앞에서 폭도가족으로 낙인찍힐지도 모르는 ‘정체모를 막연한 불안감’을 경험해야했다. 이 불안감은 세대 간 전승이 되어 역사적 트라우마를 형성하였고, 그것은 아이러니칼하게도 부지불식 우리 내면에 파시즘을 형성하여 더 침묵하게 하였다.

2018년 4·3 수형인들의 재심요청에 대한 검찰의 ‘공소기각’은 제주인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거시적 안전감을 제주인에게 확보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 산간 주민들에게 폭도! 폭도새끼!라는 말은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는 상처의 출발이었다. 이런 역사적 트라우마 치유는 미시적인 상담이나 지역정치, 사회, 문화적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거시적 접근을 해왔던 제주 4·3 생존 수형인들과 도민연대의 정의를 향한 열망과 용단에 큰 박수를 보낸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하늘나라의 삼춘내외분들께도 이 기쁜 소식은 전해지리라 믿는다. 한편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직결처형을 당한 무고한 수많은 산간의 영혼들, 좌우익에 관계없이 그 과정을 지켜보며 공포에 떨었을 가여운 모든 분들께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아울러 2세대, 3세대들도 ‘내 안의 파시즘’을 깨고 나와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서로 위로할 기회가 되길 소망해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