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참전의 아픈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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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택, 전 탐라교육원장·수필가

베트남 전쟁의 불꽃은 월맹군과 월남군이 이념 대립으로 점화되었다. 점차 확전되면서 한국군이 월남을 돕기 위해 파병하기에 이른다.

전투는 전선 없이 사위에서 다발적으로 전개되었고, 수세에 몰린 월맹군은 땅굴을 파고, 게릴라 작전을 펼치면서 전쟁은 장기전으로 들어갔다. 한국군은 적과 싸우는 것 외에, 4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와 정글 속에서 지리에 익숙지 못해 많은 희생자가 속출했다.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속속 병사를 차출했다. 나도 그 속에 포함되었다. 1년여의 월남전을 치르고 규정에 묶여 전우들을 뒤로 한 채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에서 미국이 손을 떼자, 한국군도 참전 8년 8개월이란 긴 세월을 뒤로 하고 철수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월남은 패망하고 공산주의가 되고 말았다. 우리 군은 많은 전사자와 전상자를 냈으며 고엽제후유증으로 시달려야만 했다.

대가치고는 손실이 너무 컸다. 허탈한 마음뿐이다. 꽃다운 나이에 왜 우리 젊은 봉오리들이 월남 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야했는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먼 이국땅에서 그렇게 봄 눈 녹듯 스러져 갔다.

이제 월남전이 종식된 지도 반세기가 흘렀다. 월남참전전우회는 그들의 영혼을 기리고, 조국 수호와 평화를 위해 해마다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올해도 지난 11월 6일 한라체육관에서 1000명의 전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54주년 기념식과 더불어 나라사랑 결의대회를 가졌다.

식이 거행될 즈음 전우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언제 봐도 반가운 얼굴들이다. 하지만 옛날 젊었던 시절의 패기는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머리는 백발이 성성하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깊게 파이고, 심지어는 휠체어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다.

식전에 군악대가 ‘비목’이란 노래를 연주했다.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하다. 전우들은 그 당시를 회상하는 듯 두 눈을 꼭 감고 묵념을 하는 모습이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랫말과 그들의 마음이 통했을까.

행사는 파월 당시 불렀던 맹호·백마·청룡부대의 부대가를 힘차게 제창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제 생존자 대부분이 몸조차 가누지 못하고 고엽제와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 전우들의 몸과 마음도 지쳐만 간다. 그러나 누구 하나 거들떠보거나 따뜻하게 반기는 사람도 없다. 찬밥 신세다. 그렇게 살다 통한의 생을 마감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도 남북이 이념 대립으로 맞서고 있다. 물론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예측 불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전쟁이 발발하면 수많은 재산과 부모 형제를 잃게 되고, 자유와 평화마저도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해서 병역을 기피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개탄스럽다. 얼마 전 유죄로 영어생활을 하던 병역거부 양심선언자들이 무죄로 50여 명이 풀려났다. 그런데 이들이 교도소를 나오는 모습이 가관이다. 반성은커녕 개선장군이나 된 것처럼 으스대고, 희희낙락거리는 게 아닌가. 부아가 치밀었다. 조금이나마 예를 갖추고 다소곳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선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안보에 앞장서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가 살아 갈 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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