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판 곡식 익을 때 내 고향 풍경 사무치게 그립고
번영로 겨울 삼나무 숲 느끼고 백록담 푸른 정기 옮아온다
겨울 삽화
-강은미
길이 되기 위해 생의 날줄을 지우리라
햇살 한 줌 바람 한 줌 하루 한 끼로 사육되는
번영로 삼나무 숲이
아랫도릴
보인다
춥고 가느다란 그림자가 포개지면서
개발의 기계톱이 여지없이 잘려나간
침엽수 밑둥치들의
야윈 뼈가
뒹굴고
허연 스크럼의 겨울 숲을 일으켜 세우며
먼발치 오름들이 오래 참던 눈발을 부를 때
아 저기 원심력 키우는
바람, 바람
까마귀
‘제주의 가을’을 노래로 펼쳐놓는다. ‘참새와 허수아비’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을 서란영이 팬플릇으로 연주한다. 야외무대에 익숙한 모습인데 실내에서 더 어우러진다. ‘석양에 노을이 물들고/들판에 곡식이 익을 때면/노오란 참새는 날 찾아 와주겠지/….’ 객석 곳곳에서 흥얼거리는 소리와 멜로디에 젖어든다.
잠깐 숨을 고르자, 소프라노 오능희가 홍관오의 시에 한재숙의 작곡한 ‘망향 제주’를 이동용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느리고 애달픈 서정으로 노래한다. ‘그 누가 알리요 찾아드는 나의 옛 생각/멀리서 비치는 달이 한없이 눈물짓네/두고 온 고향에는 노란꽃이 피었겠구나‘ 제주를 떠나 본 도민은 안다. 제주의 바다, 오름, 돌담 등이 눈에 밟히고 사무치게 그립다는 것을….
강은미의 시 ‘겨울 삽화’를 연극인 정민자가 낭독한다. ‘길이 되기 위해 생의 날줄을 지우리라/햇살 한 줌 바람 한 줌 하루 한 끼로 사육되는/번영로 삼나무 숲이/ 아랫도릴/ 보인다’ 도로를 확장한다는 이름으로 사라지는 삼나무 숲의 슬픔이 처절하다.
전병규의 소금 연주에 신디사이져 반주로 ‘제주바당 진혼곡’을 연주한다. 전병규는 “제주 바당을 보면 단절감도 있지만 세계로 뻗어나갈 희망 또한 떠올린다. 그런 의미로 많은 영령들을 위로하고 싶다.”며 연주를 시작한다. 진혼곡이 꽤나 경쾌하다.
정지용의 ‘백록담’을 김정희와 시놀이팀이 릴레이로 낭송한다. ‘…./고비 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백록담 조찰한 물을 그리어/산맥 우에서 짓는 행렬이 구름보다 장엄하다’ 백록담의 푸른빛의 정기가 옮아온다.
대미를 장식하는 퍼포먼스다. ‘회귀’의 주제로 조명이 꺼지고 무대 위엔 김백기 퍼포머가 차가운 투명 물통 속에서 웅크린 몸이다. 어머니의 자궁을 연상케 한다.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우주, 달, 별, 먼지, 슬픔, 절망, 희망, 노년, 죽음. 물질, 생명, 관계’ …. 김정희와 시놀이팀 이혜정이 수많은 단어를 또박또박 열거한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그곳이 어딘지를 묻는다. 투명했던 물이 차츰 검은색으로 짙게 변하자 얼음장 같은 수조 속 주인공의 손끝에 꽃 한 송이 어렵사리 피어난다. 삶과 죽음, 관계와의 등등에서 자연으로의 ‘회귀’가 주제다. 희망의 꽃 한 송이 건져 올렸다.
※‘2018년 바람난장’을 모두 마쳐, 2019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글=조영랑
시=문순자·오승철·홍관오
작곡가=고승익·안성복·한재숙
그림=홍진숙
진행=정민자
시낭독=김정희와 시놀이(이혜정 이정아 장순자)
영상·사진=채명섭·홍예 허영숙
음악=김에스더·이동용·서란영·우상임·전병규·한동균·오능희
음악감독=이상철
퍼포먼스=김백기
음악감독=이상철
총감독=김해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