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회관 30년사’의 출간 단상(斷想)
‘문예회관 30년사’의 출간 단상(斷想)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현행복,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제주에 문예회관이 들어선 지 꼭 30년이 되는 지난 2018년, 크고 작은 기념행사들이 여럿 이어졌다. 그 중에 가장 가슴 벅찬 일은 무엇보다도 ‘문예회관 30년사’의 출간이다. 흔히들 사람 나이로 칠 때, 인생 30년이란 기간은 홀로서기가 가능한 ‘이립(而立)’의 나이요, 따로 살림살이를 차릴만하다고 해서 ‘장유실(壯有室)’이란 표현으로 상징화하곤 한다. 시간의 연속성에 주목해 보면 이 삼십 성상(三十星霜)을 두고서 한 세대(世代)란 말로 달리 표현된다. 그래서 개관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내건 타이틀이 바로 ‘세대(世代)의 경계(境界)를 넘어’였다.

지난여름, 문예회관 야외 광장에서 열린 여민락(與民樂) 콘서트가 그랬고, 서예가 특별 기념 초청전에도 이 표현을 내세웠듯이, ‘문예회관 30년사’란 발간 사업 또한 똑같이 적용됐다. 그동안 문예회관이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며 새로운 거울에 비춰보는 작업을 책자에 담아내려고 일 년 전부터 야심차게 계획을 구상했다.

조선을 대표하는 선승인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의 시구는 일을 시작할 때 늘 스스로를 경계하게 한다.

“눈 쌓인 벌판 위를 지나갈 때면, 굳이 어지럽게 다니진 말아야 하네. 오늘 내가 걸으며 남겨놓은 발자국, 마침내 뒷사람 따라갈 길 만듦이 될 터이니.[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지난 30년 동안 제주 예술계는 변화와 성장 속에서 지속적 발전을 거듭하면서 활동 공간의 영역을 한층 넓혀왔다. 그 중심에는 늘 ‘문예회관’이 도민과 함께 자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동광양 둔덕에 터를 다지고 둥지를 틀 때만 하더라도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이 지금은 왕성한 문화예술 활동이 전개되는 도심 속 대표 문화공간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도민의 삶의 질 향상과 문화향유 욕구를 충족시켜 나올 수 있도록, 때로는 품격 있는 우수 작품을 기획해 초청공연을 선보이는가 하면, 제주예술인들의 자생력을 고양시키는 계기를 만드는 일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곤 했다.

‘문예회관 30년사’에는 이런 소중한 과거 현장의 기록은 물론 동시에 미래의 청사진을 조명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노력했다.

‘걸어온 30년, 걸어갈 30년’이란 대목의 특별좌담회를 통해, 그 현장을 지켜온 전문 예술인들과 생생한 예술현장의 고증을 듣고 또 제각기 다른 장르의 숨겨진 일화들을 풀어, 역사의 실타래를 하나씩 정리하려고 했다.

이 책의 출간을 그 누구보다도 관심 있게 지켜보며 기뻐해줄 역대 원장님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출간 보고회도 가졌다. 원로 선배들의 이어진 축사의 한 말씀, 한 구절은 흡사 안개 낀 길에서 길을 잃고 해맬 때, 노마(老馬)가 나타나서 훌륭한 길 안내자가 됨과 다름 아니다.

길이란 사람들이 자주 다녀서 만들어진다. ‘자연·인간이 공존하는 제주문화’의 목표도 한갓 구호에만 머물지 않으려면 그 창달을 위한 새로운 길 닦음의 노력이 절실하다. 심기일전해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면서 부지런히 노력해 나갈 때, 역사는 그날의 일을 소중하게 기억할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