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싸는 물 시민 드는 물 싯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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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초빙교수/논설위원

지난해 우리나라 실정을 대변하는 사자성어로, 교수신문은 ‘임중도원(任重道遠)’을 내놓았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이를 제안한 전호근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앞에 난제가 많으므로 굳센 의지로 해결해 나가라’는 바람을 담았다 한다. 이 말의 상황처럼 심신이 무거운 사람이 어디 대통령뿐이랴.

서울에서는 자영업자들의 신음소리가 외환위기 때 못지않다. 2018년 1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규정한 자영업자수는 676만명에 달한다. 6월의 688만명보다 반 년 만에 12만명이 감소한 수치다. 이를 두고 유경준 교수는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 사회안전망이 강하지 않은 우리나라는 구조조정 압력만 커져서 자영업자들이 더 무거운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 분석한다. 실제로 서울의 거리를 돌아보면 폐업하는 가게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처럼 수주가 늘어난 조선업에 대해, 대통령이 ‘물들어 왔을 때 노 젓기를’ 주문했다. 지난해 조선업의 선박 수주량은 세계 1위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어디서 물이 들어오느냐’는 반문과 함께 ‘경제를 모르는 소리’란 불만이 일렁였다. 사실 2018년 증가한 조선 수주는 2011년 호황기의 5분의 1 수준으로, 조선업의 지역경제는 보릿고개를 겨우 넘어가는 형편이다.

이처럼 불투명한 현장경제를 의식한 듯, 우리 정부는 2019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2.7%로 잡았다. 성장률을 특정 수치 대신 범위로 제시한 것은 대내외 여건이 불확실해서 정확한 예측이 어려운 탓이다. 제주도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관광 및 건설업 조정으로 성장률 저하가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내국인 관광객의 감소로 관광 중심의 제주경제는 중국인 관광객의 유입속도에 향방이 달렸다’는 불확실성을 예고한다. 이 점을 의식한 듯, 원희룡 지사는 ‘외부요인에 취약한 1·3차 산업 중심의 기존 생태계를 다변화하고, 일자리 창출과 민생경제 안정에 역점을 두겠다’고 새해 포부를 밝혔다.

한편,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은 ‘밀물에 어서 배를 띄워서 기회를 살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세계적인 강철왕 카네기는 모래사장에서 밀물을 기다리듯 덩그러니 놓여 있는 조각배 그림을 집무실에 걸어 놓았다. 청년시절, 이집 저 집으로 물건을 팔러 다니다가 주저앉은 어느 노인의 집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림 밑에는 “반드시 밀물이 밀려오리라. 그날, 나는 바다로 나가리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그의 신념대로 밀물이 찾아왔고, 즉각 배를 띄울 수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 카네기보다 더 확고한 밀물정신이 제주 해녀들의 삶에서는 일상이 된다. ‘싸는 물 시민 드는 물 싯나(썰물이 있으면 밀물이 있다)’는 속담이 그 반증이다. 살아가는 게 아무리 고단하고 힘들어도 썰물 후에 들물 오듯 반드시 좋은날이 오리라는 믿음으로 한 길 두 길 깊은 물속으로 허위적 허위적 들어가는 해녀들.

새해에는 세계 경제가 썰물에 처할 전망이다. 바로 썰물이 시작될 때 바다로 나가는 물질의 원리를 살펴보면 어떨까? 썰물과 밀물의 섭리를 헤아리면서, ‘살암시민 살아진다’고 토해내는 숨비소리, 그 희망의 노래에 귀 기울이면서. ‘싸는 물, 드는 물, 딱 보기만 허민 알아. 그걸로 평생을 살아신디’라는 해녀삼춘의 인생담이 가슴으로 밀려오리라. 그럼에도 숨이 끊어지도록 사는 게 힘들어지면, ‘그래도 바당, 좋은 거라’는 해녀할망의 삶을 끌어안는 거다. 힘차게 두발을 차며 파도를 넘어보자. 삶의 무게로 갈 길이 먼 이 아침에, 해녀들의 바다를 바라본다. 고난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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