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걸어 잠긴 문 뒤로 잊혀 가는 역사의 발자취
(1)걸어 잠긴 문 뒤로 잊혀 가는 역사의 발자취
  • 김정은 기자
  • 승인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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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비지정 문화재를 찾아서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중 한사람…일제에 의해 제주로 유배
김희주 군수 후손들 거주하다 매각…옛 형태 잃고 개방도 안돼

유배의 땅, 4·3으로 희생당한 이들이 흘린 피로 물든 붉은 땅, 13000()들의 고향, 자연을 품은 곶자왈 제주섬. 이 모든 게 제주를 아우르는 명칭이다. 오랜 시간 사람들은 척박한 화산섬을 일궈오며 문화유산을 만들어냈다. 시간이 지나며 이 문화유산들은 기억에서 사라지며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곳마저 잊혀져가고 있다. 옛 건축물과 근대건축, 신당(神堂), 4·3관련 유적, 방사탑 등 지정되지 않은 문화유산 현장을 찾아 나섰다. 편집자주

남강 이승훈 선생의 유배지는 민간에 매각돼 방치되고 있다. 자물쇠로 굳게 닫힌 이곳은 역사, 문화로서 높은 가치가 있지만 개방조차 되지 못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우리들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의 유배지는 민간에 매각돼 방치되고 있다. 자물쇠로 굳게 닫힌 이곳은 역사, 문화로서 높은 가치가 있지만 개방조차 되지 못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우리들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다.

■옛 건축물 (1)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이승훈 유배생활지

고즈넉한 낮은 돌담길로 이뤄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는 옛 항일운동의 구심점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곳이 남강 이승훈 선생의 유배생활을 했던 장소라는 걸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역사, 문화에 관심과 조예가 깊은 이들은 잘 알지만 제주지역민들에게는 잘 다가오지 않는 듯 하다.

조천마을 일주도로를 지나 조천포구로 향하다가 연북정 남쪽 좁은 길로 들어서면 이승훈 유배생활지(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473-2번지)가 나온다. 언뜻 보면 일반 가택처럼 보여 그냥 지나치게 된다.

마을 사람들도 이 곳이 유배지라는 걸 잘 알지 못했다. 사람은 살고 있지만 몇 십년 째 문이 굳게 닫힌 장소로만 알고 있었다. 20년 전 민간에 매각되며 아예 개방자체가 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3·1 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남강 이승훈

1864325일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출생한 이승훈 선생은 오산학교와 민립대학을 설립하고, 물산 장려 운동, 신민회 활동 등을 벌였으며 1919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다.

1910년 국권이 일제에 의해 피탈되자 많은 인사와 지도자들은 광복 운동과 국권 회복을 위해 해외로 망명했지만 이승훈 선생은 끝까지 국내에 남아 신민회 사업과 교육 사업을 계속해왔다. 그는 항일 구국 운동에 계속 나섰다가 1911년 일제에 의해 제주도로 유배됐다.

제주지역에서 기독교 사상과 신교육, 새 정신을 주민들에게 전하며 교육과 문화 사업을 일으켰다. 제주 성내 교회 안에 영흥소학교를 건립해 교육과 산업을 통해 조국 독립을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11년 유배중이던 가을(9)에 안악사건의 연장선에서 105인 사건이 일어나며 신민회 간부와 600명의 애국지사가 잡혔는데, 이때 이승훈 선생도 주모자로 지목되며 서울로 압송됐다.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은 그는 출옥 후에 오산학교로 돌아갔고, 동아일보사장, 물산장려운동 등을 하다 1930년에 생을 마감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의 적거지-초가지붕 형태가 원래 유배지의 본 모습이다.
남강 이승훈 선생의 적거지-초가지붕 형태가 원래 유배지의 본 모습이다.

김희주 군수의 집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이승훈 선생이 제주에 도착한 것은 19114월말(또는 5월초)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최초의 제주도 유배인인 그는 제주도 유배역사의 마지막 인물이기도 하다.

이승훈 선생의 유배지는 원래 제주군수 및 정의군수를 지낸 김희주의 하인이 머물렀던 곳이었다. 앞서 개화사상가 박영효는 1907년 이 집 사랑채에서 유배생활을 보냈다.

이후 김희주 군수의 후손들이 이 집에 살다가 민간에 매각됐다.

낡은 대문을 들어서면 이 집의 내력을 알 수 있는 초록 동판이 부착돼 있다.

199010월 남강문화재단과 제주도사연구회가 공동으로 남강 이승훈 선생 유배처동판을 제작해 이 건물 벽에 부착한 것이다.

그러나 후손들이 떠난 후에는 초가집이 기와집으로 개조되는 등 옛 유배처의 모습을 잃게 됐다. 더욱이 민간에 매각되고 개방되지 못하며 이 초록 동판마저 들여다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남강문화재단 관계자는 제주에 있는 동안 민족운동과 개화운동을 펼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남강 이승훈 선생이 기억되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며 굳게 걸어잠긴 문 뒤로 문화유산이 이렇게 사라져 가고 있다고 했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이유는?

등록문화재 추진했으나 소유권 민간에 있어 어려운 상황

표지석은 흔적조차 사라져

사실 이승훈 선생 유배생활지는 등록문화재로 추진될 뻔 했지만 무산됐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에 따르면 이 유배지는 역사문화재로 의미 있는 곳으로 등록문화재 추진을 시도했지만 현재 소유주와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서 실패했다.

본래 초가지붕이던 형태도 기와로 변형된 데다 이승훈 선생이 생활했던 흔적도 사라졌다.

민간에 소유권이 있기 때문에 행정에서도 손쓸 방도는 없다고 했다.

원래 표지석도 세워져 있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김나영 세계유산본부 역사문화재과 학예연구사는 문화유산으로 가치 있는 곳이나 소유주와의 대화가 진척되지 않아 안타깝지만 문화재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