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풀의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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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희, 수필가

마당에 심은 잔디의 김을 맸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인데 계절마다 다른 풀이 싹 튼다. 지난여름엔 햇볕이 무척 따가워 해가 숨은 뒤에 마당에 나가 매일 풀을 뽑았다. 사오십 평 남짓의 넓이다. 잡초는 완전히 제거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여기저기 새로 나는 풀이 지천이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돋아나는 잡풀이 한도 끝도 없다.

12월이 되면서 겨울 풀이 자라고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호미 들고 작업을 한다. 풀도 제 몫을 다하려고 억센 잔디 뿌리 틈을 헤집어 가며 싹을 틔운다. 생각해 보면 땅은 참 위대하다. 끝없이 무엇인가를 키워 내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 뿌리를 내리는 식물 또한 대단하다. 지난여름 검정콩만 해도 그렇다. 작은 그릇에 콩 씨를 넣어 물에 불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 삼 일 지나자 싹 틔울 준비를 하는 게 보였다. 씨앗에는 싹 트기에 필요한 모든 영양분이 담겨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이른 여름부터 콩잎을 따 먹었는데 가을엔 적지 않은 양의 콩을 수확했다.

풀 한 포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은 며칠간 눈이 쌓여 있다가 녹은 후다. 눈 속에 묻혀 있던 작은 풀이 살아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더욱 실감하게 된다. 만물의 영장이라 뽐내는 인간은 눈에 묻힌 채 며칠을 살아남을 수 없다. 물속에서도 그렇고 흙 속에서도 버티지 못하고 생명을 잃고 만다. 그러나 땅에 뿌리를 뻗고 있다는 것만으로 풀은 혹한 속 눈을 견뎌낼 수 있다. 그리하여 풀은 자기 몫을 다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어찌 위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으랴.

계절에 따라 옮겨 다닐 수 없으면서도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견디는 작은 풀을 본다. 춥다고 또는 덥다고 호들갑을 떠는 우리는 겨울날을 견디어 내는 보잘것없는 식물을 보며 성찰할 일이다.

올해는 정원의 사과나무에 사과가 셀 수 없이 많이 열렸다. 이렇게 많이 달리기는 처음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맛있었다. 쾌적한 옷을 입은 예술작품이 따로 없다. 내가 사과나무에 해 준 것이 무엇인가. 암만 생각해도 별로 한 게 없다. 고작 떨어진 낙엽을 쓸어 나무 밑에 버린 것이 그것이다. 오히려 땅을 아낄 요량으로 아무 데서나 잘 자란다는 머위 뿌리를 심었다. 두 가지를 수확할 얕은 속셈에서였다.

그 많은 열매를 달고 땡볕을 견디어 내는 걸 보며 많이 미안했다. 무농약 사과를 먹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잎이 도르르 말리는 병충해가 와도 농약 한 번 뿌려 주지 않았다. 내가 한 일은 대견한 마음으로 나무를 우러르며 우듬지를 눈길로 몇 번 어루만져 준 것뿐이다.

땅을 밟고 살지만 요즈음은 흙을 가슴 깊이 느껴 볼 기회가 많지 않다. 흙이 있는 곳에 생명도 있다. 어린 시절 겨울에 밭에서 김을 맬 때 점심은 간 고등어를 구워 먹을 때가 많았다. 결국 풀은 땔감이 되고 재가 되어 흙이 된다.

풀은 한 해도 빠짐없이 사시사철 자란다. 흙이 있는 곳에 잡초가 자라지 않는다면 세상은 무척 삭막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나라에는 잡초가 없었으면 좋겠다. 사실 내 어머니께선 인생의 칠 할은 밭매는 데 바치셨고 나머지는 물에 드는 데 쓰셨다. 어머니는 누군가 평생 김을 매었던 밭을 매었다. 그 밭에 누군가는 또 김을 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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