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봉과 부지화
한라봉과 부지화
  • 제주신보
  • 승인 2019.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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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정치부장

추억의 명작드라마 ‘올인’에서 송혜교는 “한라봉이 오렌지보다 훨씬 더 맛있다”고 했다. 드라마에서 한라봉과 다금바리 회를 먹는 장면이 나오면서 제주특산품 홍보에 훈풍이 불었다.

2003년 서울에서 종방 축하연이 열리자, 당시 우근민 지사가 상경해 송혜교와 이병헌 등 전 출연진에게 명예홍보대사 위촉패를 전달했다.

한라봉은 완전히 익도록 오래 두었다가 늦게 수확하는 만감(滿柑)류의 대명사가 됐다. 그런데 한라봉은 제주산이 아니라 1972년 일본의 과수시험장에서 ‘청견’과 온주귤의 일종인 ‘폰캉’을 교배해 만든 교잡종이다.

일본은 이 과실의 상표명을 ‘데구본’, 품종명을 ‘부지화(不知火)’라고 공표했다. 우리나라에선 꼭지가 볼록 튀어나온 모양이 한라산을 닮았다고 해 한라봉이라 불리고 있다.

제주에서 생산되는 감귤의 97%는 일본 품종이다. 현재 가장 많이 재배되는 노지감귤인 흥진, 궁천, 일남1호는 일본에서 도입했다. 부지화(한라봉)에 이어 세토카(천혜향), 감평(레드향), ‘붉은 여왕’을 뜻하는 베니마돈나(황금향)가 줄줄이 히트를 쳤다.

감귤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데는 재일제주인들의 애향심이 한 몫을 했다. 일본산 감귤 묘목은 1954년부터 재일제주인들이 가져다주었고, 1970년까지 총 349만 그루에 달했다.

재일제주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증 형식으로 대량 반입을 했다.

이들은 고향 친지들에게 적게는 수백 그루에서 많게는 수천 그루의 감귤 묘목을 보내줬다.

그런데 일본 연구진이 청견을 얻기까지 32년, 한라봉을 출시하는 데는 40년이 걸렸다. 장기간 연구개발로 세계적인 기술을 갖춘 일본에선 여전히 감귤 육종연구가 활발하다.

일본 국립연구개발법인(한국의 농촌진흥청)은 2014년 ‘아스미’와 ‘미하야’라는 신품종을 출시했다.

도내 일부 농가에서 이 감귤을 도입해 식재한 결과, 일본 측 개발자는 지난해 중순 국내 법무법인을 통해 해당 품종의 감귤을 생산·판매하지 말도록 소송을 제기했다.

즉, 소송을 통해 로열티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감귤 종자전쟁이 본격화됐지만 국내산 품종 개발은 제자리걸음이다.

농촌진흥청 감귤연구소는 1980년 궁천조생 돌연변이인 ‘신익조생’을 첫 개발하는 등 현재까지 21개 품종을 출시해 등록했다.

제주도농업기술원은 2013년 한라봉 돌연변이인 ‘써니트’를 육성했다. 우리 연구진도 24개의 품종을 개발했지만 재배 면적은 3%에 머물고 있다. 농가에선 여전히 일본 품종을 선호하고 있어서다.

로열티를 둘러싼 소송을 두고 너도나도 예견했다고 하지만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됐다.

감귤 육종연구에 지속적으로 인력과 예산을 투자하지 않은 탓이다. 연구를 시작한 지 20년도 안됐으니 일본보다 나은 새 품종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그러나 남의 탓만 할 게 아니다.

감귤연구소가 2004년 개발한 ‘하례조생’에 이어 2017년 출시한 ‘윈터프린스’가 최근 농가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묘목이 부족해 공급이 달린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일본 고서기(古事記)에는 일본 사신이 제주도로 추정되는 상세국(常世國)에서 서기 70년께 귤을 구해 갔다고 기록했다. 역사서를 보면 일본이 제주 귤을 수입한 셈이다. 일본학계에선 오래 전부터 금귤(金橘)·감자(柑子)·유자(柚子) 등 제주에서 재배돼 온 토종감귤을 도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내놓은 감귤이 한라봉을 넘어서려면 육종연구에 더 많은 지원과 관심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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