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된 여성 관점으로 본 리지 보든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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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지'

1892년 미국 매사추세츠 폴 리버에서 미국을 발칵 뒤집을만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대부호 보든 가의 둘째 딸인 리지가 도끼로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살해한 것이다. 딸이 부모를, 그것도 도끼로 수십차례 내리쳐 죽인 이 끔찍한 사건에 미국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리지 보든 살인사건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국인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며 이미 책, 연극, 오페라, 드라마 등으로 수차례 만들어졌다.

오는 10일 개봉하는 영화 '리지'는 이전 작품들과 달리 리지 보든과 보든 가문의 하녀인 브리지트 설리번과의 관계에 집중했다.

영화는 살인이 일어난 날에서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시작한다.

리지(클로에 세비니 분)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억압 아래에 살고 있다. 호시탐탐 아버지의 유산을 노리는 새어머니와 삼촌도 두렵다.

어느 날 리지 앞에 새 하녀 브리지트(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나타난다. 리지는 브리지트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매기'라는 하녀 이름으로 아무렇게나 부르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원래 이름을 찾아준다.

설상가상으로 병까지 앓고 있는 리지를 향한 억압은 점차 심해지고 동시에 브리지트와의 비밀스러운 관계도 시작된다. 이 관계가 깊어질수록 리지는 더욱 코너에 몰려 극단적인 선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상하게 한다.'

리지와 브리지트의 애정 관계가 자극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두 사람의 계급 차이는 리지를 기존 남성의 위치에, 브리지트를 여성의 위치에 놓는다. 계급은 다르나 남성 중심사회의 피해자인 두 사람이 서로 손을 맞잡고 연대를 한다는 것으로 읽히는 순간도 있다.

하녀와 주인 아가씨의 관계라는 설정에서 영화 '아가씨'(2016)와 그 원작인 '핑거스미스'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다만 남자들을 처단하고 승리하는 또는 살아남는 여성들이라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결을 같이 한다.

무엇보다 클로에 세비니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가 눈에 띈다.

제작에도 참여한 클로에 세비니는 억압당한 리지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그는 당당하게 아버지와 삼촌에 저항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에 떠는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는 역할 탓인지 세비니보다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두려움에 떠는 눈빛도 뇌리에 깊이 남는다.

영화에서는 도끼라는 도구의 상징성도 크게 강조된다. 원래는 나무를 찍는 용도인 도끼는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원래 용도로 사용되지 않는다. 도끼로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머리를 쳐서 죽임으로써 억압을 깨부순다는 은유의 표현이다.

특히 자유롭게 날지 못하고 갇혀있는 리지의 비둘기와 리지를 동일시해보면, 영화 초반 리지의 아버지가 비둘기의 목을 도끼로 쳐 죽이는 장면은 후반부의 살인과 대칭을 이룬다.'

영화에서 어두컴컴한 집 안은 시각을, 서늘한 피아노 연주와 빅토리아식 주택에서 걸을 때마다 나무가 삐걱대는 소리는 청각을 자극한다.

실제로 리지 보든은 무죄로 풀려났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부장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살인을 한 리지에게 배심원들이 '좋은 가문의 여성이 그렇게 잔인한 살인을 했을 리 없다'고 무죄 평결을 내렸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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