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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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시인/논설위원

‘우리에게는 감사할 만한 것들이 많다. 두 눈이 있어서 하늘에 별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두 귀가 있으니 밤과 낮으로 들려오는 귀뚜라미나 지저귀는 새 소리, 망치소리나 터빈소리, 개 짖는 소리,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생각을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 언어와 문자가 있다. 어머니, 형제, 친구들이 있으며, 영혼의 길을 밝혀주는 빛을 만날 수 있다. 피곤한 발을 끌면서도 도시와 늪지, 해변, 산과 평야, 집과 거리, 정원을 거닐 수 있다. 악을 멀리하고 선을 지향하는 인간의 정신을 알 수 있고, 낡은 틀을 흔들어 버릴 수 있는 마음이 있으며, 웃음과 눈물 속에 슬픔과 행복을 맛볼 수 있다. 이런 삶 속에 내 노래와 사람들의 노래가 울리니, 이처럼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르헨티나 민속음악가인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의 유명한 노래 “삶에 드리는 감사(Thanks to the Life)” 가사 내용이다. 정치에 관한 의견을 노래로 표출했던 소사는 독재정권에 의해 1970년대 말에 공연하다가 체포되기도 하고 해외로 추방당해 망명 생활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노래는 악랄함에 맞서는 힘은 그보다 더 모질고 독한 행동이 아니고, 오히려 너그럽고 따스하며, 넓게 삶을 품어서 더욱 오래 유지하도록 하는 선한 마음에 있다고 느끼도록 만든다.

그런데 우리는 요즘 두 눈 대신 한 눈, 두 귀 대신 한 쪽 귀만 있는 듯, 점점 잘 보거나 들으려 하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품는 일도 줄어든 것 같다. 문명이라는 거대한 기계가 작동되는 와중에서 재빨리 반응하며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서 그런가. 어쩌다가 미끄러지면서 사람이 그 톱니에 끼어서 몸부림치고 비명을 질러도 그 소리는 기계 소리 속에 즉각 흡수되어 들리지도 않게 되는 그런 현실이라서. 빠르게 진행되는 일과 속에서 고통으로 일그러지기에 우리들 삶은 여유 있는 마음이 살아남기에 너무 척박한가.

마음을 나누는 일이 너무 어려워진 현실에서 개인들은 고통스럽다고 말로 표현하는 것조차 포기 한 채 그대로 절망 속으로 추락해 버리는 시대가 된 것처럼 보인다.

어린 딸을 안고 차가운 겨울 밤 바다로 뛰어 내리는 젊은 엄마, 가족을 책임지는 마지막 방법으로 스스로 그들의 삶을 빼앗아버리는 가장, 학대와 무지 속에서 죽어가는 어린 생명들과 순진무구한 동물들, 벌어지지 말았어야 하는 여러 가지 죽음의 형태들이 절망으로 연달아 사람들을 삼킨다.

회한과 자책감을 끌면서 우리들은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현란한 조명 속에 젊은 육신들이 화려하게 누비는 무대처럼 세상은 전개되지만, 전달되는 내용 하나 없이 끝나는 노래공연처럼 낯설고 기이하고 멀게만 보인다. 온갖 음식을 등장시키면서 탐닉 속에서 현실을 잊으려는 시도도 보인다.

그러나 어두운 구석에서 컵라면으로 추위를 달래는 허기진 손들과, 심각한 자원고갈이 입을 벌리고 있는 어두운 심연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직 비정한 힘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 듯이 보여도, 그에 굴하지 않고 더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온정을 살려 내야만 길이 열릴 것이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헤아리고 돌볼 줄 아는 우리의 마음이 살아 움직일 때 삶은 건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좋은 세상에서 삶이 아름답게 이어지도록 새해에 빌어본다.

이런 마음이 영원히 우리 안에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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